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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고치는 의사 은퇴, 영혼 돌보는 의사로 새 출발

사우스베이 동네의사 윤삼혁 장로의 은퇴 이야기

34년간 의사 생활 마침표 찍고
노후는 장기 선교사로 헌신키로

그동안 100여 차례 의료선교
선교할 수 있는 게 노후의 안락

“난 부족한 게 너무 많은 사람”
거저 받은 은혜 나누는 게 선교


수십년간 잡아왔던 청진기를 내려놓았다. 나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은퇴’라고 하겠지만, 윤삼혁 장로(68ㆍ주님세운교회)는 이제 ‘시작’이다. 그는 사우스베이 지역에서 34년간 ‘윤 소아과’를 운영해왔다. 윤 장로는 “나는 평범한 동네 의사”라고 웃지만, 지역 사람들에게 그는 늘 선교하는 의사로 알려져 있다. 소아과 전문의로 활동해온 윤 장로는 지난 1일부터 다른 의사에게 병원을 넘겨주고 은퇴를 결정했다. 그가 평생 꿈꿔온 노후 때문이다. 지난 10일 윤 장로를 만나봤다. 그에게 은퇴와 노후의 안락은 다른 의미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거저 받은 은혜 나누는 게 선교

윤삼혁 장로에게 명함을 건넸다.

윤 장로는 기자의 명함을 넣기 위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매우 낡은 검은 지갑이었다. 오랜 세월과 함께 검소함이 묻어난다.

"은퇴도 하셨는데 이젠 노후를 좀 즐겨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람은 저마다 정말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일이 한두 가지씩 있는데, 나에게 선교는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의사 일도 선교하는 마음으로 했어요. 선교지에 나가 사람들을 직접 도울 때는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나고 너무 행복했죠. 이젠 직업적으로는 은퇴도 했으니까 더 자유롭게 선교하러 다닐 수 있어서 노후가 더 즐거울 것 같아요."

윤 장로는 지금까지 100여 차례 이상 의료선교를 떠났다.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1년에 3~4번은 선교를 다닌 셈이다. 북한에도 장애인 센터 설립 등을 돕기 위해 3번이나 다녀왔다. 터키, 르완다, 네팔, 케냐, 과테말라, 아프가니스탄, 니카라과 등 틈만 나면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녔다.

왜 그렇게 선교를 다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윤 장로는 "내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삶 가운데 가장 쉽게 나눌 수 있는 게 선교"라고 했다.

"나는 항상 1등은 아니었어요. 늘 10등 정도 했던 거 같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1등은 안 되던데요(웃음). 공부를 탁월할 정도로 잘했던 것도 아니고, 언변이 뛰어나지도 않았죠. 집안도 너무 가난했고 특별히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없어서 부족한 게 많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저에게 '은혜'라는 선물을 주셨어요. 그 귀한 것을 거저 받았는데 어떻게 나만 누릴 수 있겠어요".

그래서일까. 그에게 은퇴는 본격적인 선교의 시작이다. 주변 지인들은 노후를 즐기라고 하지만 윤 장로는 오히려 장기 선교를 준비중이다. 일단 내년 초 에티오피아 지역으로 3년간 나가게 된다. 그곳에서 한국 교회들이 세운 의과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현지 빈민촌을 대상으로 의료선교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은퇴는 진짜 의사가 되는 시작

윤 장로는 재난이 발생하면 매번 동료 크리스천 의료인들과 선교팀을 꾸려 달려가곤 했다. 올해 초에는 시리아 난민촌과 네팔 지진 피해 복구 현장을 다녀왔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지난 1994년 르완다 내전 현장으로 떠났던 의료선교다.

당시 집단 학살 등으로 르완다에는 100만 명 가량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때 한 달 일정의 의료선교 제의가 들어왔는데 병원을 비우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고민을 깊이 하면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났었죠. 그때 자동차는 완전히 파손됐는데 저는 다친 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제야 저의 좁았던 시각을 봤어요. 삶을 주관하는 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란 사실을요. 그때부터 선교는 내 계획, 내 뜻, 내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끄신다는 걸 인정하게 됐죠."

요즘 윤 장로는 신문 등에서 이슈가 되는 시리아 난민 뉴스를 접하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고 했다. 의료가방을 들고 세계 곳곳에 다니다 보니 어려운 상황을 그 누구보다 실감해서다. 그는 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직접 청진기와 약품을 들고 그 땅으로 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감기약 있잖아요. 그런 약이 어떤 선교지에서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보물이 된다는 거 아세요? 이 세상에는 청진기를 심장에 처음 대보는 아이들도 너무 많아요. 의료품도 없는 그렇게 열악한 곳에 과연 복음은 들어갔을까요? 선교는 우리 크리스천의 평생 사명이어야 합니다."

그에게 은퇴는 영혼을 돌보는 진짜 의사가 되는 출발점이다.

“선교는 어렵지 않다”

색소폰ㆍ플루트 연주하기도
선교하려면 건강은 필수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윤삼혁 장로는 너무 가난했다.

어렸을 때 고등학생이던 둘째 형이 결핵을 앓았다. 당시 결핵약을 살 돈도 없었는데 형이 “집안에 부담을 줄 수 없다”며 편지를 두고 집을 떠났다.

“그때 어머님이 눈물을 많이 흘리셨죠. ‘집에 의사만 있었어도 형이 그렇게 나가진 않았을 텐데’ 하시면서요. 그때 의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제가 가진 의술로 도와줘야겠다는 마음도 갖게 됐죠.”

윤 장로는 삶의 모든 것이 선교에 맞추어져 있다.

그는 인생에 있어 꼭 세 가지 결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한인 선교사가 나가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의료선교팀을 보내겠다는 것, 선교를 더 오래 하려면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악기를 익혀서 선교지에서 찬송가를 연주해주는 것 등이다.

“저도 선교지에 가면 의료 시설이 부족해서 전문적인 진료를 못해요. 하지만, 그곳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얼마나 큰 힘이 되는데요. 의료선교팀이 가면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윤 장로는 그동안 각 교회의 의료선교팀 구성을 앞장서서 도왔다. 출석하는 교회가 아니더라도 타교회 의료선교팀이 있으면 같이 참여했다. 주변 병원의 의사들을 모아 팀을 구성해 수십 차례 선교지에 보내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한인교회들을 향한 아쉬움도 있었다.

“한인교회들은 개교회 중심주의적인 사고가 강하다 보니 선교도 같이 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 서로 눈치를 봐요. 그걸 초월해야 합니다. 요즘은 전문인 선교를 해야 합니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거나 혹은 어떤 기술이 있다면 그걸 그대로 선교지에서 활용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요. 저도 선교지에서 찬양을 들려주려고 색소폰과 플루트를 배웠어요. 제가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다들 선교를 너무 무겁게 그리고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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