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으로] 9·11 14주기 ‘원 월드트레이드센터(1WTC)’를 가다
폐허속… 그러나 희망은 피어났다
개장 시간을 약간 넘긴 10일 오전 9시20분. 전날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타워 허리춤부터 안개가 자욱하다.
“올라가면 경치가 잘 보이자 않을 수 있는데 괜찮겠냐”는 안내원의 말에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은 길게 줄을 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가 삼엄하다. 세계 지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전광판 상단에 뜨는 숫자 90만6042. 현재까지 누적 방문객 수다. 가방과 소지품 검사를 마친 뒤 엘레베이터로 향하는 길, 양 옆의 LED 전광판에 안전모를 쓴 인부들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며 타워 건설 일화를 소개한다.
어두 컴컴한 엘레베이터에 오르자 “문을 보지 말고 뒤로 돌아라”는 안내원의 지시와 함께 내부 화면이 바뀐다. 1735년이라고 적힌 숫자와 함께 초원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집들과 나무, 지금 이 자리의 280년 전 모습이 펼쳐진다. 1736, 1737, 1738 한 해씩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와 함께 엘레베이터에 가속이 붙으며 귀가 먹먹해진다. 1900년이 넘어가니 고층 빌딩들이 입체적으로 쑥쑥 올라오고 2012년부터는 공사중인 1WTC안에서 바라보는 허드슨 강이 철물 구조대 사이사이로 보인다. ‘와, 대단하다.’ 느낄때쯤 102층. 도착까지 걸린 시간은 47초. 1분이 채 안된 시간에 280년을 건너 뛰어 올라왔다.
이제 경치가 보여야 하는데 또 가로로 긴 스크린에 옐로캡이 도로를 누비는 뉴욕 시내의 활기찬 모습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이건 뭐지?’ 하는 사이 굉음을 내며 스크린을 속을 가득 채운 전철 문이 열렸다 닫힌다. “문이 닫히니 비키세요”. 뉴요커라면 하루에 두번은 꼭 들어야만 하는 출퇴근의 주문같은 목소리를 뒤로하고 또다시 뉴욕의 노을, 조깅하는 사람들, 센트럴파크의 여유로움, 숨막힐듯한 야경이 차례로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역동적인 뉴욕의 모습에 매료될 때쯤, 스크린이 오른쪽부터 차례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며 구름이 드러난다.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 로어맨해튼의 전경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10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으로 레스토랑과 커피숍을 지나니 360도로 허드슨강·뉴저지·맨해튼 업타운·브루클린과 퀸즈까지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흐린 날씨 탓에 가시 거리가 짧았지만 관광객들은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영국에서 왔다는 브랜든·애나 윌리엄스 부부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9·11테러로 붕괴된 자리에 멋진 건물이 다시 탄생한 것 자체가 승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9·11을 목격했고 당시 여자친구와 구조 봉사활동도 했다는 전망대 안내원 앨런 질레스피도 “1WTC는 미국인의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당시 뉴욕을 떠날까도 생각했지만 여기만한 곳이 없다는 그는 “뉴욕의 가장 큰 장점은 변화·역동성·희망·자유이며 미국을 이끌어나가는 힘”이라고 표현했다.
확실히 지난해 9.11 추모박물관을 찾았을 때와 1WTC의 모습은 달랐다. 박물관에서 여기저기서 눈물을 보이는 관람객들도 눈에 띄었던 반면, 이 곳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솔솔 풍겨오는 음식 냄새와 커피 향, 기프트숍에서 선물을 고르는 분주한 모습의 관광객들, 여기저기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미국인·관광객들과 뛰노는 아이들 ….
잿더미 속에서 꿈틀대던 자유가 테러 발생 14년 후, 이 곳에서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구름도 발 아래 있는 1776피트 상공에서.
황주영·정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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