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열린 쿠바를 가다] 바뀌는 국민 스포츠…야구의 나라? 이젠 축구
'맨손 야구' 사라지고
거리마다 '맨발 축구'
TV로 유럽축구 보며
청소년들 스타 꿈 꿔
그런데 가이드 펠리페 이슬라(59)씨의 말이 의외다. 야구 경기를 하는 아이들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젓는 것이 아닌가.
두 시간 가까이 아바나 시내 골목을 다녔다. 정말 맨손 야구는 구경하기 어려웠다. 대신 공원과 거리마다 '맨발 축구'가 한창이었다.
펠리페씨는 "요즘 쿠바의 변화 중 하나가 젊은이들 사이의 축구 열풍"이라고 말했다.
15번가에 있는 야외 농구코트에도 축구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끼(aqui·여기), 아끼!"
"아다르가르(adargar·막아)!"
오후 4시 섭씨 36도(화씨 97도), 습도 70%의 폭염만큼이나 함성은 뜨겁다.
경기 방식이 독특했다. 5명씩 팀을 짜서 먼저 5골을 넣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농구코트 밖에는 이긴 팀과 경기하려는 다른 팀이 대기 중이었다. 웃통을 벗고 운동화, 혹은 샌들, 아니면 맨발로 공을 쫓았다.
골대는 가로 1.5m 세로 1m 크기의 철골로 만든 휴대용 미니 골대다. 골문이 좁기 때문에 오히려 골인은 더 짜릿했다.
코트 밖으로 나온 진 팀의 하비에르 톨레도(24)씨는 "야구는 배트, 글러브 등등 장비들이 필요하지만 축구는 공과 골대를 표시할 돌멩이 두 개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고 예찬론을 폈다.
쿠바 축구열풍의 배경은 두 가지다. 2008년부터 국영TV에서 유럽 프로축구팀 경기를 거의 매일 방송해주고 있다. 또 인터넷에서 각종 TV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가정집에 배달하는 '빠케테(Paquete)' 덕분이기도 하다.
하비에르씨는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푸이그를 좋아하지만, 요즘은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가이드 펠리페씨도 "특히 메시가 소속된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간 빅매치가 중계되면 양팀 저지를 입고 집집마다 모여 응원한다"고 거들었다.
펠리페씨에 따르면 월드컵이 열릴 때 쿠바 국민이 응원하는 국가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스페인 순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선수들도 쿠바에서 유명하다. 15번가에서 만난 움베르토(24)씨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라서 박지성을 잘 안다"고 말했다.
쿠바의 축구 열기는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변화다. 움베르토씨와 같은 팀원인 다니 리베라(38)씨는 "축구는 쿠바의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라며 "30대 이상은 야구, 그 아래는 축구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쿠바 야구의 상징인 5만5000명 규모의 아바나 '라티노아메리카노 스타디움(Estadio Latinoamericano)'에서도 축구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을 땐 경기장을 절반으로 나눠 아마 축구 경기를 한다고 펠리페씨는 설명했다. 과거의 쿠바 소년들에게 출세의 유일한 길이 미국 메이저리그였다면, 현재 쿠바의 젊은이들에게 유럽 풋볼리그가 21세기형 성공티켓이 되고 있는 셈이다.
미래의 쿠바는 지금 맨발로 공을 차며 심장이 터질 만큼 뛰고 있다. 설사 그 목표가 1.5m의 좁은 골문이라 해도.
글·사진=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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