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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423

연못의 독서-길상호

그날은 날아든 낙엽을 펼쳐들고
연못은 독서에 빠져 있었다.
잎맥 사이 남은 색색의 말들을 녹여
깨끗이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초겨울 가장 서둘러야 할 작업이라는 듯
한시도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았다.
침묵만 남아 무거워진 낙엽을
한 장씩 진 흙바닥에 가라앉히면서
물살은 중얼 중얼 페이지를 넘겼다.
물속에는 이미 검은 표지로 덮어 놓은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연못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 그 옆을 지키고 앉아 있어도
이야기의 맥락은 짚어낼 수 없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그림자를 뜯어
수면 아래 가만 내려놓고서
비밀처럼 깊어진 연못을 빠져나왔다.
그날 읽을 것도 없는 나를 넘기다 말다
바람이 조금 더 사나워졌다.

연못 속 연꽃잎은 이마 위 내리는 낙엽을 책으로 받아 읽는다. 온갖 모양 온갖 색깔로 만든 하나님의 책을 받아 읽는다. 연꽃잎에게는 그것이 성경일 것이다.

그 연꽃 잎 한 남자라 해도 좋고, 한 여자라 해도 좋겠다. 아니 연못 속 깊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연 잎도 독서하고 싶었으리라. 자신의 꽃을 위해, 뿌리를 위해.

낙엽을 책으로 읽는 연잎, 이미 다 읽은 몇 장쯤은 뿌리 근처에 덮어두었으리라. 날마다 읽지도 않거나, 읽을 것 모르는 사람은 꽃잎 위 구르는 물방울 같은 시간을 넘기다 넘기다 바람처럼 물결처럼 하늘에서 마음 내려앉았을 것이다. 독서하는 연못의 내력을 끝내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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