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복음의 씨앗 뿌린 곳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요"

70일 순례 나서는 왕영수 신부

일평생 해외 한인성당 기틀 세워
세상 떠나기 전 그 지역들 보고파


"앞으로 70일 동안 제가 거쳐간 사목 장소들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왕영수(80.프란치스코 하비에르ㆍ부산교구) 신부는 1970년대 초에서 1990년까지 독일을 시작으로 미주지역과 캐나다 남미에 이르는 한인 공동체를 창립했다. 또 지난달 28회째 열린 남가주성령쇄신대회 첫 회를 개최한 사제이기도 하다. 한인성당이 없었던 미국 동부와 중부 등지를 계속 다니면서 한인공동체의 기틀을 세워 '해외교포 사목의 전설적인 신부' '성령 사제'라고 불리고 있다. 왕영수 신부를 만나 보았다.

-지난 4월2일 부산교구 주교좌 남천성당에서 사제수품 50주년 축하식을 하셨다는 기사를 보았다. 반세기가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인데 축하한다.



"신학생 때 보따리를 몇 번이나 풀었다 해야 사제서품을 받는다. 신부가 되고 나서 죽을 때까지 사제복을 계속 입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한 '업 앤 다운'이 있겠는가. 지난 50년을 돌이켜 볼 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내 힘으로 걸어온 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인상이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과 너무 닮았다.

"많이 듣는 얘기다. 사제들은 신학교 입학할 때 추천서를 써 준 신부님이 '아버지 신부'가 된다. 21살 때(1956년) 내가 신학교에 갈 때 추천서를 써준 분이 부산교구 황금동 성당의 당시 본당 사제인 김수환 추기경님이셨다. 그때는 신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을 때였다."

-1972년부터 한인공동체가 없는 곳마다 다니면서 한인성당을 창립하셨는데 이번에 어디를 방문할 계획이신가.

"30살 때 사제서품을 받았는데 올해 80살이다. 사도 바오로가 죽기 전에 자신이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생각나면서 나 역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돌아보고 싶어졌다. 큰 마음먹고 '70일 순례'를 계획해서 LA가 첫 방문지이다. 이어 동부로 가서 워싱턴 D.C 캐나다 토론토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콜럼버스 데이톤 조지아주 애틀란타 독일에 간다. 샌호세를 거쳐 9월 중순께 LA로 왔다가 귀국할 예정이다. 가장 의욕적으로 사제생활을 하면서 거쳐 간 곳인 만큼 꼭 한번 보고 싶다.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

-한인 성령봉사자교육을 시작하셨고 미주지역 성령지도신부를 오래도록 하셨는데 성령체험이 있으시나.
"미국에 온 지 3년 정도 지나 1976년에 미국인 성직자들을 위한 성령세미나에 참석해서였다. 사제서품을 받은 지 11년 되는 해인데 푸른 눈의 미국인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눈물을 흘리고 이상한 언어로 노래하는 걸 보고 '잘못 왔구나' 하는 생각을 세미나 내내 했다. 그러나 다녀 오고 나서부터 내 안에서 새로운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어떤 변화인가.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사제들이 시간마다 의무적으로 바치는 성무일도를 바쁘다는 핑계로 빠뜨렸으니 기본적인 기도생활이 흐트러져 있던 때였다. 성무일도의 시편들이 그렇게 감미롭게 다가올 수 없었다. 성서가 읽고 싶어졌다. 말씀들이 달게 느껴져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성서를 볼 정도였다. 함께 살던 미국인 신부님이 '머리가 이상하게 될 수 있으니 그만 읽으라'는 농담까지 했다. 그 다음이 가난의 은혜였는데 사제로서 결코 화려하게 산 것이 아닌데도 자꾸 더 가난해지고 싶었다. 어느 날 고백소에 한 부인이 들어와서 혼자서 미국에서 외아들을 교육시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학비가 없어서 포기해야 할 것 같다며 우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따 사제관으로 오세요'했고 당시 갖고 있던 돈을 모두 내주었다. 부인이 돌아간 다음 내 마음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 알았다."

-사제서품 50년 기념행사 때에도 참석자들을 놀랍게 해주셨다고 들었다.

"(웃음) 성령님은 한번 주신 것을 거두시지 않는다. 가난이라는 카리스마(은혜)는 항상 내게 머물렀다. 이번에도 감사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지금 제가 갖고 있는 땅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드리겠다'고 말해 버렸다. 바닷가가 보이는 곳인데 은퇴 후에 살면서 신자들이 쉴 수 있는 피정장소로 계획했는데 그것마저 성령님께 돌려드리고 완전 무소유가 되었다. 주님 앞으로 더욱 가볍게 오라고 하신 것 같다. 이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저 감사 드린다."

-지금은 어디서 살고 계시나.

"1991년에 다시 부산교구로 와서 본당을 맡다가 2006년 은퇴하여 지금 새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한국 오면 한번 방문해달라"

▶주소: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383-1

▶연락처: 052-239-1249 011-488-1239

김인순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