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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시민 민족주의와 단군 민족주의

박용필/논설고문

강정호가 뛰고 있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미국 야구 대표팀이 맞붙는다면? 최근 한국의 집권당 대표가 미국 방문 중 발언한 내용과 맞물려 어쩌면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질문을 던져봤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중국보다 미국'이라며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고 다짐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앞으로 대세는 중국이라는데 왜 미국 곁에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건지.

요즘 강정호의 활약상을 지켜보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릴 것 같다. 피츠버그 돌풍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강정호. 감독도 동료들도 그가 예뻐 죽는다. 영어는 서툴지만 붙임성이 좋고, 게다가 적시타를 펑펑 때려주니 구단은 헐값에 횡재를 했다며 싱글벙글이다.

피츠버그의 라인업을 한 번 훑어봤다. 이게 웬일? 거의 80%가 강정호처럼 외국 태생이다. '유엔 야구단'이라고 해도 뻥이 아닐진대. 미국 대표팀과 피츠버그의 차이는 간단하다. 미국 대표팀은 미국 국적의 선수들로만 구성된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반면 피츠버그는 전세계에서 스타 플레이어들만 모아 놨다. 당연히 좋은 성적을 낼 확률이 높다.

또 하나. 미국 대표팀은 국제대회 성적이 초라하다. 야구팬이라면 지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기억하겠다. 미국이 한국에 3-7로 져 망신을 당한 대회다. 마이너리그보다 못하다며 우습게 봤다가 그만. 그래서 내기를 한다면 피츠버그에 한 표를 던지겠다.

그래도 명색이 미국의 구단인데 주전 선수들이 죄다 외국 용병이라면 팬심이 피츠버그를 떠날 수도 있을 터. 그런데 전혀 아니다. 스타디움은 늘 구름관중으로 꽉꽉 찬다. 심지어 현지 언론은 팀의 간판스타 '미국인' 앤드루 매커친보다 '한국인' 강정호의 기여도가 훨씬 높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삼성 라이온스 주전 선수들이 몽땅 동남아 등지에서 왔다고 가정해 보자.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이런 상황을 수용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관중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테고.

미국은 '시민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를 표방하는 나라다. 조상이나 출신국가가 다르더라도 일단 귀화했으면 미국인으로 받아들인다. 민주주의와 자유, 인류애 등의 가치관이 바로 미국 시민이 된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체성이다.

전기차 '테슬라'의 창업주 일런 머스크에 따르면 그렇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그는 스티브 잡스 이후 '혁신의 아이콘'으로 뜬 인물. 미국서 살며 기업을 하다 보니 '왜 미국인가'에 대한 답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어떤가. '단군 민족주의'라 부르면 어떨지 싶다. 단일 민족이라는 자부심은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큰 버팀목이 되어줬다.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외국인 체류자들이 100만명을 돌파한 건 이미 오래 전. 신혼부부 10커플 중 한 쌍은 국제결혼이다. 그런데도 차별적 행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 보면 혈통을 중시하는 '단군 민족주의'가 이제는 사회통합의 저해요인이 돼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당 대표 일행이 짬을 내 피츠버그 전을 지켜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강정호에 환호하는 미국 관중을 벤치마킹하며 왜 '중국 보다 미국'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을 텐데. 글로벌 시대에선 아무래도 '시민 민족주의'가 보편 지향적이다.

자신의 국적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응답한 미국인이 72%나 된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문득 생각난다. 온갖 인종과 민족이 모여 살고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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