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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사제 박민서 신부 인터뷰…"하느님은 나를 농아로 만드셨습니다"

듣지 못하는 이 위해 하느님 전해
청각 장애인 위한 성당 짓고파

서울대교구 가톨릭 농아선교회 담당 사제인 박민서(47ㆍ베네딕토) 신부가 지난 13~24일 성 토마스, 성 아그네스, 성 마태오 한인성당에서 '하느님 사랑 안에서의 우리의 신앙'이란 주제로 특강을 가졌다.

수화로 진행된 강의는 한국서 동행한 한국 가톨릭 농아선교협의회 담당사제인 김재섭(비안네) 신부가 통역을 해주었다. 귀국 전 한인타운의 이냐시오 카페에서 박 신부와 김 신부를 만났다. 통역은 김 신부가 맡았다.

-한국의 첫 청각장애인 사제인데 사제서품은 언제 받았나.

"2007년 서울대교구에서 받았다. 아시아 최초다.(웃음)"

-이 곳 신자 중에 한국에 청각장애인 신부가 있다는 걸 몰랐던 사람도 많다.

"그래서 처음으로 방문 계획을 세웠다. 지금 한국 가톨릭은 청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청각장애인 첫 사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하신 일은 정말 놀랍다."

-어떻게 어려운 신학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 긴 얘기이다. 특강에서도 계속 말했듯이 결코 내 힘으로 이뤄질 수 없는 과정이었다. 정상으로 태어났는데 2살 때 열병을 앓았고 '마이신' 이라는 약을 먹었는데 부작용으로 청각을 상실하게 되었다. 기억할 수 있는 소리는 전혀 없다. 들을 수 없어서 말도 할 수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엄마'이다."

-하느님을 많이 원망했을 것 같은데.

"그때는 하느님을 몰라 원망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을 원망했다(웃음). 부모님은 나를 정상적인 일반학교에 보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농아학교에 가게 했는데 미술선생님의 영향으로 가톨릭에 관심을 갖게 되어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화로 교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세종로 성당에 혼자 다니게 됐다. 그때 세례를 받았다."

-그때는 원망할 수 있었겠다.

"(웃음) 그렇지 않았다. 하느님을 알고 나서는 하느님께 묻곤 했다. '왜 나를 이렇게 했냐?'고. 하루는 십자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나처럼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속시원히 하느님을 알려줄 수 있는 사제가 되어 그들을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를 농아가 되게 하신 이유를 서서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갔나.

"당시엔 한국에서 청각장애인이 사제가 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서를 여러 곳에 냈지만 장애인이라 거절 당했는데 경원전문대(성남시에 있었고 지금은 없어짐)에는 합격이 됐다. 에피소드는 교수님도 이 사실을 몰랐다가 출석 부를 때마다 대답 대신 손을 드는 걸 이상히 여겨 나에게 와서 물었고 그제서야 농아인 줄 알고 교수님이 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나의 의지를 보고는 강의내용을 따로 프린트해서 주셔서 B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산업디자인 전공). 그러나 취직은 인터뷰마다 낙방했는데 한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받아줘서 1년동안 일했다."

-그럼 어떻게 신학교에 갔나.

"취직이 되었지만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신부가 되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 결국 사표를 내고 부모님이 모두 농아인 정순호 신부님을 찾아가 뜻을 밝혔다. 미국인 농아사제인 토마스 콜린 신부을 소개해 줘서 26살 되던 해(1994년)에 워싱턴 D.C의 갈로뎃대학교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사제가 되기 위한 철학, 신학 공부의 길고 힘든 여정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정말 하느님이 원하시는가'라고 되물으며 도중에 하차 하려고 여러번 시도했다. 영어도 힘든데 영어 수화까지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어 수화와 영어 수화는 전혀 달랐다. 2년간 철학 공부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성요셉 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한 지 일년이 지난 다음 청각장애인 보조 프로그램이 중지되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콜린 신부의 도움으로 성요한 신학교를 찾게 되었고 거기서 신학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사제서품은 한국에서 받았나.

"26살 때 유학을 떠나 47살 때 한국으로 와서 서울대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20년 넘게 걸렸다(웃음). 내 힘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사목을 하셨나.

"서울과 지방 그리고 해외에서도 청각장애 신자들을 위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농아 사제가 나 혼자이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농아선교회가 수유동에 있는데 80명 수용 공간에 청각장애인 신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지금은 200명이 넘게 미사를 보러 온다. 지금 청각 장애인을 위한 성당을 짓는 일을 추진 중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미국에는 청각장애인 사제가 많다. 수화통역자와 속기사가 농아 학생 한 사람을 도와주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 사제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을 똑같이 대해주길 바란다. 수화를 못해도 종이에 적어서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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