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들 "우리는 중남미로 간다"
생활비·의료비용 저렴…베이비부머 이주 늘어
비자·활인혜택 등 유치 경쟁도
불안한 치안·인프라 부족 문제
# 텍사스주 오스틴에 거주하던 페그 페어베이론 부부는 1년 전 파나마로 이주했다. 여유있는 은퇴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50대 중반인 페그는 30년간 교사로 일하다 퇴직했고 50대 후반인 배우자도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다. 부부에게는 페그가 받는 월 2935달러의 교사 연금이 주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이 돈으로 오스틴에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페그는 보조교사로, 남편도 파트타임 일을 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부부는 파나마의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여유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현재 월 생활비는 2133달러.표 참조> 오스틴의 절반도 안된다. 페그가 받는 교사 연금만으로도 충분하다. 집을 짓기 위해 매달 저축도 한다. 신축 주택은 10년간 재산세 면제 혜택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페그는 "식료품은 물론 유틸리티와 전화, 심지어 인터넷 사용료도 오스틴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며 "오스틴에 있었다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직도 일을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애리조나주 시애라비스타에 거주하는 타린 카다몬 부부는 7년 전 은퇴했다. 은퇴 후 뭔가 삶의 변화를 꾀하던 부부는 얼마 전 중남미 이주를 결심했다. 저렴한 생활비와 온화한 날씨 등으로 은퇴자들이 거주하기 좋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부부는 몇몇 국가를 돌아본 후 최근 중미의 코스타리카에 주택을 임대했다. 800스퀘어피트 규모의 작은 집이지만 월 임대료는 525달러에 불과하다. 부부는 일단 이곳에 6개월간 거주한 후 인근의 파나마와 남미의 파라과이,우루과이 등에서도 생활해 볼 계획이다.
은퇴 후 중남미 국가로 이주하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다. 일부는 아예 삶의 터전을 옮기기도 하고 연중 몇 개월간 머물기도 한다. 이들 국가가 은퇴자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비와 생활비, 의료비용 등이 미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소셜시큐리티 연금 정도의 수입만으론 은퇴생활이 어렵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월 평균 1500~2000달러 정도면 충분히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미국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다. 미국으로 급히 돌아와야 할 일이 생겨도 문제가 없다. 최근 미국 은퇴자들로 부터 각광받고 있는 곳이 멕시코와 파나마, 코스타리카 등이다. 이들 국가는 모두 '인터내셔널 리빙 매거진'이 선정한 '2015 은퇴자가 생활하기 좋은 세계 10개국'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들 국가로의 이주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회보장국의 소셜시큐리티 수표 발송 현황 자료를 보면 급증세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보장국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중미 지역으로 보내진 소셜시큐리티 수표는 총 2만8126건이다. 2005년에 비해 26%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이 기간 파나마 지역은 112%, 코스타리가는 32%가 급증했다는 것이 사회보장국의 설명이다.
중미 국가들의 은퇴자 유치도 활발하다. 이들의 유입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은퇴자들을 위한 은퇴촌을 조성하는가 하면 비자발급 등에서도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중 가장 적극적인 국가가 파나마다. 파나마는 미국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펜시오나도 비자(pensionado visa)'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월 1000달러 이상 송금받는 은퇴자들에게 발급하는 체류 비자다. 소셜시큐리티 등 각종 연금도 포함된다. 특히 이 비자 소지자에게는 호텔,영화관, 식당 이용은 물론 약처방에 대한 할인 혜택도 제공된다. 할인폭은 영화관 등 엔터테인먼트 50%, 항공료, 식당, 전기료 및 전화료 25%, 의료비 20% 등이다.
또 파나마의 국내 은행에 5000달러만 예치하고 회사를 설립하면 '프렌들리 네이션스 비자(friendly nations visa)'를 발급한다. 회사 설립에 드는 비용은 650달러 정도로 영업 실적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안한 치안문제와 인프라 시설 미비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에 따르면 중미 지역으로 이주했던 한 은퇴자는 얼마 전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밤중 거주하던 집에 무장강도가 침입해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벽장에 숨어있어 화는 면했지만 당장 짐을 쌌다. 그런가 하면 한 은퇴자는 "중남미에서의 내일은 내일이 아니라 단지 오늘이 아니라는 의미"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프라와 서비스 정신 부족으로 일상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는 의미다. 즉,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에서의 생활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적응에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언어 문제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지 언어에 빨리 익숙해져야 적응이 쉬워진다. 따라서 만일 중남미 이주 계획을 갖고 있는 은퇴자라면 미리 스패니시를 배우라는 것이 먼저 이주한 사람들의 조언이다.
이런 일부 문제점에도 불구 은퇴자들의 중남미 정착은 갈수록 증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고 진취적 성향이 강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중남미 이주'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터내셔널 리빙 매거진'의 한 관계자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중남미 지역에서의 은퇴생활에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며 중남미로 이주하는 은퇴자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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