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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들

김령의 퓨전에세이 573

내가 처음 바다를 만난 것은 유치원 다니기 전이었다. 인천 앞바다 긴 줄에 매달아 바닷물에 담가두었던 사이다를 건져 올려 마시며 바라보던 아련한 수평선, 그 아름다운 기억속의 바다와는 달리 세상은 바다를 슬프고 아픈 곳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항구의 이별’ ‘바다가 육지라면’ ‘흑산도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부산 갈매기’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이런 노래들을 들으면 바다가 이별을 해야 하고 울어야 하는 절망과 체념의 장소였다.

어제 저녁 열린 음악회에서 가력 50년의 가수라며 소개받아 나온 남진도 ‘가슴 아프게’를 부르고 있었다. 천금성의 해양소설은 나에게 바다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바다의 비밀도 조금은 알게 되었고, 자꾸 바다로 나가려는 남자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제7 동백호 김승태 선장이 칠흑 같은 밤 폭우 속에 적도를 지나 인도양에서 건져 올린 여섯 마리의 ‘혼마구도’는 갑판에 발디딜 틈도 주지 않았다. 그는 고기떼의 대장인 1200킬로그램짜리 마지막 한 마리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고기 대신 자신이 에다에 휘감겨 끝없이, 끝없이 바다 속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 때 그의 머리 속에는 평화롭게 유영하는 고래 떼가 아련히 떠올랐다. 이는 그의 육신과 영혼이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음(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혼마구도가 어떤 물고기인지 모른다. 아무래도 일본말 같은데 먹어본 적도 없다. 매우 희귀하고 비싼 물고기라는 것만 알 뿐이다. 그러나 그것에 목숨을 걸어야 했을까? 그는 어쩌면 자신이 돌아갈 곳이 그 곳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모비 딕의 에이허브 선장처럼. 영국 왕에게 작위를 하사받았던 바이킹 드레이크 선장도 바다를 자신의 유배지로 생각했으리라.



미국의 바다는 아름답다. 그래 바다 가까이 살면서 나도 여름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 때가 되면 게가 나돌기 시작한다. 처음엔 미국의 스팀 크랩이 짜기만 했는데 먹다보니 그 짠맛에 묘한 마력이 있음을 알았다. 게 없이 지내야하는 겨울이 섭섭해졌다. 그래서 늦가을까지 많은 게를 얼려둔다. 얼었던 게로는 스팀 크랩 맛이 안 나므로 겨울엔 그냥 한국식 꽃게탕을 만든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 집에서 게 파티도 참 많이도 했다. 이제는 나이 들어 스팀 크랩을 대물림하는 수상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게살이 듬뿍 든 크림수프도 이 집의 자랑거리다. 이 수프 생각이 간절한 겨울을 보내는 게 그이에게는 참 지루한가보다.

그런데 이번엔 맛이 이상하다. 왠지 그 집 맛이 아니었다. 손이 바뀌었나? 생각도 해보았지만 뒤이어 나온 스팀 크랩도 볼품이 없다. 게들이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위기라는 느낌이 스친다. 뭔가 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멕시코만, 발트 해, 아드리아 해 등의 사막화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다.

생태 순환고리에서 한쪽이 파괴되면 전생태계가 무너지는 건 우리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작은 건 한 부셸에 70불이면 살 수 있었는데 작년엔 300불이었다. 지난 50년 동안 대형 어류의 90%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보니 옛날처럼 커다란 조기도 못 본지 오래 되었다. 머잖아 사라질 큰 물고기 얘기는 책 속에서나 만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주말 오후 물가의 식탁이 즐겁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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