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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그리스 사람, 한국 사람

동에서 부는 바람 서에서 부는 바람
허종욱 버지니아워싱턴대 교수, 사회학박사

1960년대 그리스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가 미국을 비롯해서 국제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줄스 다신 감독이 배우이며 자신의 아내인 멜리나 메르쿠리를 주연인 매춘부로 등장시켜 히트를 친 영화다. ‘일리아’라고 불리는 이 매춘부는 미 해군 군함들이 정박하는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에서 매춘을 주업으로 하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성이다. ‘일리아’는 이 항구에 머무는 남자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인생을 즐긴다.
 
그녀는 일요일이면 어떤 일이 있어도 영업을 중단하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거나 극장에 가서 그리스의 고대 비극을 감상한다. 그녀는 그리스 문화에 대한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남의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문화를 탐방하고 공부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호머’라는 미국 철학자가 일리아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지성과 미모에 감탄한 호머는 일리아를 매춘의 소굴에서 구해 내려고 애를 쓰지만 그녀는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 호머는 결국 실패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일리아는 그리스 문화가 가지고 있는 자존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자본주의를 배격한다. 주인공 멜리나 메르쿠리는 배우이면서 실제로 당시 그리스 사회주의 정권에서 문화부장관을 맡고 있었다. 이 영화는 미국을 비롯해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잘난체하면서 그리스 문화를 무시하는 행위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지난 5일에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자본주의 문화와 그리스문화 가운데 65%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후자를 택했다. 즉 국민은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긴축재정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표시다. 지난 5년간 긴축재정으로 연금과 임금이 삭감됐을 뿐 아니라 실업률이 치솟는 경제파탄을 겪었으면서도 더 이상 유로 채권국가들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이로써 국민들은 사회주의 정권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내세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우리식대로 한다’에 손을 들어주었다. 일요일인 이날 지중해 해수욕장들은 투표를 마치고 일광욕과 해수욕을 위해 몰려든 피서객들로 발들여 놓을 틈이 없었다. 개표가 완료되자 아테네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에서는 치프라스 총리 이름을 연호하며 북을 치며 호각을 불면서 춤을 추는 시민들이 개표결과를 축하했다. 그들은 “그리스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
 
1997년 12월 3일은 한국경제의 국치의 날이다. 국가경제가 도산위기에 빠졌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김대중정부는 IMF로부터 195억달러를 빌리기로 결정,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긴급경제구제금 합의서에 서명을 한 날이다.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금리는 20%까지 치솟았다. 환율은 800원에서 2000원으로 폭등, 원화가치가 폭락했다. 한보철강 대우 기아차 등 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랐다. 실업자는 10개월 사이에 50만명에서 170만명으로 늘어났다. 물가는 날마다 하늘을 치솟아 상승률은 7.5%에 이르렀다. 어느모로 보나 지금 그리스가 당하고 있는 경제위기보다 훨씬 깊은 위기였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이 위기를 그리스식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리고 신(新)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다. 금부치를 팔아 IMF 빚을 갚는 운동이다. 아이 돌반지, 장농 속에 숨겨놨던 금반지 금목걸이 금팔찌도 가리지 않았다. 1988년 1분기 동안 243만 명이 내놓은 165톤의 금으로 22억 달러를 벌었다. 이 액수는 당시 수출액 323억 달러의 6.8%에 달했다. 당시 TV 뉴스는 금 모으기 현장을 중계하여 금 모으기 운동은 빈부차를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전개됐다. 당시 대한민국은 외환 부채가 약 304억 달러에 이르렀다. 전국 누계 약 350만 명이 참여한 이 운동으로 모여진 약 227톤의 금으로 당시 외환부채 약 304억 달러를 갚을 수 있었다. 왜 그리스 사람과 한국 사람은 IMF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달랐을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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