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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산책] 한국 초기 교회와 동성애

옥성득 교수/ UCLA한국기독교학

최근 동성애 지지자들은 한국사에서 동성애와 관련, 다음 두 가지를 주장해 왔다.

동성애가 삼국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성행했고 용인되었다. 동성애 혐오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이식했다. 과연 그런가. 중요 사안에서 역사적 근거와 전통의 지지 여부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간과할 수 없다.

첫째, 역사적으로 동성애는 관용되지 않았다. 신라-고려에는 자료 부족으로 사례가 별로 없다. 조선시대 기록들이 전산화되면서 일부 사례가 발견되었다. 작가들이 영화, 드라마, 소설의 소재로 남자간의 계간(鷄姦)과 여자간의 대식(對食) 사례를 이용하고, 진보학자들도 가세하여 왕실, 궁녀, 기생, 여종, 군인, 사당패, 승려와 같은 특수 집단에서 벌어진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나 조선 성리학의 성도덕은 동성애를 엄금하고 엄벌에 처했다. 한두 명의 왕, 왕비, 궁녀, 양반가 부인이 동성애를 했지만, 그 예외적 사례가 영화 등으로 나가서 마치 조선시대에 동성애가 용인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1876년 개항과 더불어 남색이 늘어났다. 일본인 상인이나 협객들이 개항장에서 한국인 미소년들과 계간하여 성병이 늘었다. 1885-86년 제중원 첫해 보고서를 보면 성병 환자와 항문 환자가 수백 명씩 치료를 받았다.



둘째, 1884-1910년까지 개신교 선교사들의 글과 논쟁에는 동성애가 등장하지 않는다. 논쟁이 된 것은 처첩제로 일부 관용파가 있었으나 논쟁을 거쳐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해 조혼과 더불어 처첩제를 엄격히 금했다. 그 결과 1905년 전후 대부흥기간에 교회 안에서 일부다처제가 사라졌다. 동성애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엄격히 금지되고 혐오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제시대 신문자료에 등장하는 동성애 보도는 '금수같은 색마' 등 부정적으로 묘사되었고 대개 강간, 폭행, 살인 사건과 연결되어 있었다.

현재 반기독교운동이 개신교를 목표로 공세를 취하면서 동성애 역사까지 왜곡하고 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지혜, 간음과 추행 등 성적 부패가 심한 개신교 지도자들의 정화, 소외된 소수자에 대한 사랑과 관용, 그리고 성윤리에 대한 심도 있는 신학적 연구가 필요한 때이다.

sungoa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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