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 칼럼] 평통이 국정원인가?
김창욱 / 본사 고문
평통은 전두환 정권 시절 평화통일에 대한 정책을 건의하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출범했다. 그 출생의 한계 때문인가 그럴 듯한 존재 이유와는 달리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일쑤였다. 한때는 집권세력을 옹호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역협의회장 자리가 큰 감투라도 되는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 정권 실세와 은밀한 뒷거래를 했다는 소문도 들리곤 했다. 재외동포 참정권이 생기면서 어떤 평통위원은 비례대표 금뱃지를 달고 금의환양하는 꿈까지 꾸고 있단다. 그래서 동포들이 평통을 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냉소적이었다.
7월 출범하는 제17기 평통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새로 선정된 뉴욕협의회 자문위원은 총 171명. 하지만 이들의 얼굴은 비밀의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평통 사무처가 올해부터 자문위원 이름 비공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에 따른 프라이버시 보호 그것이 비공개 이유였다. 이에 따라 뉴욕총영사관은 최근 자문위원 선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한 것은 2013년 3월. 이 법은 본인의 양해 없이 자연인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자문위원 이름까지 비밀에 부치는 것은 융통성 없는 법 운영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전에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으면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통의 최고사령탑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비밀주의였다. 박 대통령은 인사 때면 '철통보안'으로 입각 후보자의 이름까지 보호했다. 지나친 보안은 '부실한 자격 검증'을 불렀다. 그 결과 국무총리.장관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했다. 금번 한국을 패닉 상태에 몰아넣은 메르스 발생 초기에는 환자 발생 병원까지 보호하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는 국민의 불신과 불안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 오죽하면 외신까지 '한국 정부의 비밀주의 대응법이 국제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을까. 그런데 이제 평통위원 명단까지 비공개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평통 자문위원이 국정원 비밀요원이라도 되는 것일까. 이름을 공개하면 북한 김정은이 포섭 대상 리스트에 올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명분이 아리송한 비공개 사유는 이런저런 억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과거 일부 평통 지역협의회는 자문위원을 선정하면서 영.호남 편가르기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꼴불견 싸움을 기억하는 한인들은 "평통 사무처가 자문위원 자격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친정부 인사들을 자문위원으로 골라 놓고 예상되는 시비를 막기 위해 법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평통 사무처는 오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날의 자격 시비는 '평통위원 경력'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일부 인사들에 국한된 분쟁이었기 때문이다. 고달픈 이민 생활에 찌든 대다수의 동포들은 누가 평통위원이 되든 관심이 없다. 일부는 평통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평통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런데도 '자문위원 이름 비공개 방침'에 굳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가릴 것은 가리라는 조언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민 보따리를 싼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 메르스 사태로 만신창이가 된 모국 정부가 안쓰럽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려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우지 말라.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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