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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혼돈의 기독교…"자성과 새출발 계기돼야"

연방대법원 역사적인 동성결혼 합법화 파장

가장 앞장서서 반대 외친 기독교
사회적 영향력 및 목소리 약해져
논리와 대안없이 무작정 반대만
사회를 기독교 시각으로만 해석
교회 내부의 변화 요구 목소리도
"시대가 기독교 잘못 지적하는 것"
결혼의 의미가 19년 만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미국은 지난 1996년 결혼을 남녀간의 결합이라 규정하는 결혼보호법(DOMA)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26일 연방대법원은 동성 커플이 미국 어느 곳에서나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셈이다. 특히 동성결혼을 반대해 온 기독교계의 충격은 크다. 이번 판결이 기독교에 던진 시대적 의미를 알아봤다.


대안 제시 실패한 기독교

과연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볼 수 있을까.

그동안 미국 내 주류 종교로 인식됐던 기독교는 앞장서서 동성결혼 반대를 외쳐왔다. 특히 보수 복음주의 계열은 바이블 벨트 지역(미국 남동부)을 기반 삼아 반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높여왔다. 미국 보수 기독교에 뿌리를 내린 한인 교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건 힘겨웠다.



기독교는 동성결혼 합헌 판결 소식에 개탄했다. 이번 판결은 기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미미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는 "그동안 우리는 주류 사회 속에 마치 강자의 종교처럼 행동해 왔지만 이번 판결은 기독교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성결혼 이슈는 성경뿐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 등 총체적 관점에서 봐야 하는 복잡한 이슈다 보니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논쟁이었다.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문에는 동성결혼 합헌을 인정한 이유 중 하나로 "법은 변화하는 사회 제도와 여론을 반영한다"고 명시했다.

교계에서는 "기독교가 사회를 향해 실질적인 대안 제시에 실패한 결과"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교인 박우현(45·LA)씨는 "기독교는 구체적인 논리나 대안도 없이 무작정 반대 목소리만 냈다"며 "설득을 위한 주장이 아니라, 정죄를 위한 공격이었다. 세상을 너무 '기독교의 시각'에서만 해석한 것이 패착이었다"고 꼬집었다.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 박상진 사무국장은 "입장을 바꿔서 만약 무슬림이 어떤 사회적 문제를 두고 이슬람 교리의 잣대만 들이대며 사회를 바꾸려 한다면 기독교인은 그 주장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겠는가"라며 "이제 교회는 현시대 속에서 기독교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영향력을 미쳐야 할지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사회와 종교의 충돌 우려

미국 비영리 기독법률단체인 퍼시픽저스티스(이하 PJI)에 따르면 동성결혼 합헌 발표(26일) 이후 각 교회나 교육 단체로부터 법률 자문을 요구하는 상담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 사회법과 종교적 신념의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PJI 주성철 목사(한인교계담당)는 "실제로 연방대법원 발표 후 결혼 사진 촬영 업체를 운영하는 한인 크리스천 업주가 동성커플 결혼식의 촬영을 어떻게 법적으로 거절할 수 있는지를 문의해왔다"며 "앞으로 교회 뿐 아니라 비즈니스, 비영리 기관 등은 법적으로 대비를 해놓지 않는다면 각종 차별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교인 제시 주(41·세리토스)씨는 "앞으로 공립학교 교육이나 교과서 내용 변경 등의 변화도 우려가 된다"며 "나처럼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의 경우 가정에서 가르치는 것과 학교에서의 교육이 상충될 때 자녀가 겪을 혼란이 걱정된다"고 전했다.

기독교의 사회적 대응 방식, 교인으로서의 태도, 교회의 자성 촉구 등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UCLA 옥성득 교수(한국기독교학)는 이번 판결을 두고 "타락한 이성혼이 동성혼의 합법화를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옥 교수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은 자신들이 믿는 교리에 대한 확신을 갖되, 교리적 확신에 동의하지 않는 자를 예의 있게 대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ITS 김재영 교수는 "이번 판결은 우리의(기독교) 잘못과 미흡함을 지적하는 것이고, 우리의 '회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영어권에 속한 한인 2세 사역자나 다민족 사역을 지향하는 교회 및 기독 단체는 이번 판결이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이다.

젊은층을 대상으로 다인종 교회 개척을 준비중인 데이브 로 목사는 "실제 미국 교계에서는 교인중에 커밍아웃을 하는 사례도 많다. '게이 크리스천'을 교인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 등 수많은 이슈가 존재한다"며 "이제는 한인교회도 이 문제를 무조건 덮어두지 말고 다음 세대를 위해 테이블 위에 내놓고 다 같이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변해도 성경은 변하지 않아"
미국 교계 강도 높은 비판
내년 미국 대선 판도 흔들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6일 합헌 판결 후 연설에서 "미국이 좀 더 완벽한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 '희망', '변화' '행복' 등의 단어를 수차례 언급했다. 이번 판결을 "미국의 승리"라고 치하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연설과 달리 이번 판결로 인해 갈등과 대립은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교계 및 각 단체들은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수층 및 기독교계는 더욱 결집하고 있다. 심지어 '동성결혼'이 내년 미국 대선 판도를 흔들 최대 이슈로 부각될 정도다.

윤리종교자유위원회 러셀 무어 대표는 "미국 건국 때부터 지켜온 결혼의 정의, 많은 사람이 붙잡고 있는 결혼의 전통적 의미를 대법관 5명이 바꿔버린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이번 판결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흑인을 비롯한 히스패닉 교계도 반대 여론은 거세다.

미국히스패닉기독교협회 사무엘 로드리게스 목사는 "이번 판결은 오히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사람이 차별 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미국흑인목회자연합측은 "대대적인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휴스턴목회자협회는 "목회자로서 법적 처벌을 받거나 감옥에 간다 해도 이번 판결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판결 발표 직후 전통적 결혼의 의미를 보호하기 위한 서명운동에 순식간에 5만 여명이 몰리기도 했다.

현재 존 파이퍼, 팀 캘러, 알버트 몰러, 존 맥아더 등 유명 목회자 및 교계 관계자들은 성명서, 설교, SNS 등을 통해 이번 판결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트리니티신학교 D·A 칼슨 교수는 "세상 법이 변한다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신념이나 성경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다"라며 "이번 판결로 인해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이웃을 더욱 사랑하고 성도로서 복음대로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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