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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와 작품 그 자체를 최우선하는 뮤지션"

음악팬들에게도 낯선 이름
오페라 무대 위주로 활동
정명훈에게도 지휘 배워

베를린 필 차기 상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

세계 클래식 음악팬들의 관심이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43)에게 쏠리고 있다. 지난 21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 필)가 사이먼 래틀의 뒤를 이을 상임 지휘자로 키릴 페트렌코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베를린 필은 지난달 120여 명의 단원들이 모여 상임 지휘자 선출을 위한 11시간 이상의 마라톤 회의를 펼쳤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바 있다. 당시 최종 후보로 거론됐던 이름 중 페트렌코는 없었다. 그 무렵 전문가들은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을 이끌고 있는 독일인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56)이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라트비아 출신의 안드리스 넬손스(37)를 유력 후보로 점쳤다. 하지만 베를린 필의 최종 선택은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인 키릴 페트렌코였다.

단원들은 3시간여에 걸친 2차 회의 결과 대다수의 동의를 통해 페트렌코를 차기 상임 지휘자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인 지휘자가 베를린 필을 맡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한때 나치군에 협조했단 오명을 갖고 있는 카라얀이 이끌던 독일 대표 오케스트라를 유대인 지휘자가 맡게 된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페트렌코를 선정하게 된 배경에 대해 베를린 필의 더블베이스 주자이자 보드 멤버인 피터 리에겔바우어는 "악보와 작품 그 자체를 최우선으로 하는 뮤지션을 원한 우리들의 예술적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비올라 연주자인 울리히 크뇌르저 역시 "페트렌코는 베를린필 지휘 경험이 세 번뿐인데 상임 지휘자가 되는 독특한 경우"라며 "하지만 첫 연주 후 단원들이 '다시 초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다시 초대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지휘자"라고 소개했다.

페트렌코는 2006년과 2009년, 2012년에 베를린 필을 지휘한 바 있다. 베를린 필의 부름에 페트렌코는 즉각 'OK'를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상임지휘자 직을 수락하는 성명서를 통해 "아주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최선을 다해 이 뛰어난 오케스트라에 어울리는 가치있는 지휘자가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키릴 페트렌코는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다소 낯선 이름이다. 음반도 거의 없다. 오페라 지휘를 위주로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도 그는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음악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1972년 러시아 옴스크에서 태어난 페트렌코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와 음악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났다. 11살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해 활동하다 18살에 오스트리아로 이주, 빈 음악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지휘 공부를 시작했다.

2001년 마이닝겐 극장에서 공연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지휘하며 처음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은 이후 빈 국립 오페라, 파리 국립 오페라, 코벤트 가든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유수 극장에서 지휘하며 명성을 쌓아 왔다. 지휘 스승으로는 세몬 비치코프, 에드워드 다운스, 피터 외트뵈스 등이 있으며 정명훈에게도 지도를 받은 적이 있다.

페트렌코는 오는 2018년부터 사이먼 래틀에게 베를린 필의 지휘봉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사이먼 래틀은 베를린 필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수년간 키릴 페트렌코를 존경해왔다. 그가 이 멋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할 내 후계자가 됐다는 것이 기쁘다"며 "오케스트라의 결정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베를린 필은 …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유명
카라얀이 34년 동안 이끌어


명실공히 세계 최고로 꼽히는 교향악단이다. 웅장하면서도 정교한 사운드가 베를린 필의 특징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빈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베를린 필을 꼽는다. 1882년 창단됐으며, 초대 상임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 이래 푸르트뱅글러, 카라얀, 아바도 등 클래식 음악계의 한 획을 거장 지휘자들이 베를린 필을 이끌어 왔다. 특히 카라얀은 34년간 베를린 필을 이끌며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는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랴안과 베를린 필이 함께 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불후의 명반으로 남아 있다.

베를린 필이 상주하고 있는 공연장은 서커스 텐트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관을 빗대 '카라얀 서커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2002년 부터 베를린 필을 지휘해 온 사이먼 래틀은 다소 고압적이었던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관계를 수평적이고 편안한 사이로 바꿔놓은 리더로 평가받는다.

연주자와 상임 지휘자를 단원들이 직접 뽑는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도 베를린필의 특징으로 꼽힌다. 전체 단원의 3분의 2 이상의 승인을 받아야 입단, 초빙이 가능한 방식이다. 때문에 과거에는 여성 단원이나 외국인 단원의 입단이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지극히 배타적인 오케스트라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단원들이 관현악 활동 외에 각자 실내악 팀을 구성해 활동하기도 하는데, 그 수가 30여 팀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금관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된' 브라스 앙상블'과 첼리스트들이 모인 '12명의 첼리스트'는 오케스트르와 별도로 세계 연주 여행을 다닐만큼 명성이 드높다.

이경민 기자

lee.rachel@koreadaily.com

베를린 필 역대 상임 지휘자

한스 폰 뷜로 (1887-1892)
아르투르 니키슈 (1895-192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1922-1934)
레오 보르하르트 (1945)
세르주 첼리비다케 (1945-195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1952-195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55-1989)
클라우디오 아바도 (1989-2002)
사이먼 래틀 (2002-현재)
키릴 페트렌코 (2018- )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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