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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요코는…행위 예술가 겸 반전 운동가, 7살 연하 레논과 운명적 사랑

존 레논보다 7살 연상인 1933년생이다. 도쿄의 은행가 집안 출신으로 학창시절을 왕족학교에서 보내는 등, 지극히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뉴욕으로 이주한 것은 스무살이 되던 해인 1953년. 그곳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다양한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존 레논과 만난 것은 1966년 런던의 전시회장이었다. 당시 관객이 망치로 못을 박아보게 하는 오노 요코의 작품에 존 레논이 직접 참여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비틀즈에 대해 알지 못했던 요코는 '아직 전시 준비 중'이라며 거절의 뜻을 밝혔고, 이에 존 레논이 실망하자 오노 요코는 "5실링을 내고 못을 박아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존 레논은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5실링을 내겠으니, 당신은 내가 상상의 못을 박도록 허락하면 된다"는 말로 못을 박는 시늉을 했다. 이 순간, 둘은 서로에게 운명을 느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한 또 다른 버전으로는 1965년 오노 요코가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작곡가 존 케이지의 책 출간 작업을 돕다가 존 레논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는 설도 있다.

처음 만난 당시, 둘은 각자의 배우자가 있었지만 결국 이혼하고 1969년 결혼에 골인한다. 특히 존 레논과 당시 부인이었던 신시아 레논이 이혼하게 결정적 계기는 유명한 일화다. 존 레논은 아내가 휴가로 집을 비운 사이 오노 요코와 음악 작업을 하다 사랑을 나누게 됐는데, 다음날 아침 오노 요코는 신시아 레논의 잠옷을 입은 채 집에 돌아온 그녀에게 '오, 안녕(Oh, Hi!)'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결혼과 동시에 침대에서 보내는 1주일을 공개하며 반전 메시지를 전한 '베드 인 포 피스' 캠페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둘은 이후 반전 캠페인과 공동 예술 작업에 한층 열을 올리게 됐고, 이는 레논이 비틀즈를 탈퇴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전해진다.



오노 요코는 1980년 존 레논의 비운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다. 당시 두 사람은 녹음실에서 작업 후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 아들 션 레논을 재우기 위해 잠시 함께 집에 들르는 길이었다고 한다. 오노 요코는 남편의 사후에도 지속적인 추모 사업에 앞장서며 존 레논의 문화적 유산을 전하는데 앞장서오고 있다.

존 레논의 이름값을 등에 업었다는 대중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행위 예술가이자 설치 미술가, 팝 가수, 작가, 영화제작자, 반전운동가, 페미니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 온 오노 오쿄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평생업적 부문에 해당하는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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