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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Story] "나는 지금도 '봉선화' 입니다"

위진록/방송인·수필가

해마다 광복절이 가까워지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로 시작되는 가곡 봉선화. "아닌데? 지금은 봉선화가 아니라 봉숭아인데 - "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듯 하지만 나는 누가 뭐라고해도 봉선화이지 봉숭아가 아니다.

70년 전, 17세의 젊은이가 봉선화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고향집 앞마당에 얌전하게 피던 봉숭아가 봉선화와 같은 꽃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에게도 누님들 틈에 끼어 봉숭아 꽃잎을 백반가루와 같이 짓이겨 손톱에 물 들이던 동화같은 추억이 있다. 그 봉숭아가 봉선화라는 이름의 노래로 다가 온 것이다. 그지없이 아름다운 선율, 조국과 민족의 수난을 말해주듯 처절한 가사가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르기 쉬워서 좋았다.

내가 KBS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하기 시작한 1947년부터 6.25가 일어난 1950년까지 사이에 방송 전파를 가장 많이 탄 노래가 봉선화였다고 기억한다. 봉선화는 그야말로 국민의 노래였다. 그 당시 이관옥, 김자경, 마금희 등 소프라노가 자주 불렀으나 봉선화는 역시 가장 젊었던 김천애의 애창곡이었다.

생각해보면 봉선화는 해방후 내가 배운 우리나라 가곡 제1호였고 1950년부터 시작되어 오늘까지 65년간 이어진 타국살이에서 즐거우나 슬프거나 항상 마음 졸이며 불러온 망향의 노래였다. 그러나 그 노래가 한국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봉숭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물론, 일반가정, 음악계 등 모두가 봉숭아. 봉선화는 한국에서 죽은 말이 되었으며 이미 봉선화로 이 노래를 기억하는 세대는 거의 없다고들 한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이런 일이 있어도 되는건가, 도대체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봉선화를 봉숭아로 갈아치웠을까 하고 마음 속의 가장 소중한 것을 도둑맞은 그런 침통한 심정이였다.

봉선화(鳳仙花)는 한자어지만 우리의 표준말이고, 봉숭아는 봉선화가 변화한 사투리라고 국어사전은 설명하고 있는데 왜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하면서도 봉숭아를 여러번 소리내면서 외어 보았다. 제목과 가사 속에 단 한 번 나올뿐이지만 그 한 마디의 어감으로 노래 전체의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다. 청순하면서도 처절하고 서정적이면서도 민족수난을 시사하는 것은 역시 '봉선화'였구나 하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애초에 작사자나 작곡가가 봉숭아라는 꽃이름을 몰라서 봉선화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언어의 선택은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어의 미학적· 감각적 관점에서 '봉숭아' 보다 '봉선화'가 그들 이미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 노래의 제목과 가사를 바꾼다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창작하는 사람의 자유와 기본적 권리를 유린하는 처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라기보다 나는 역시 봉숭아 보다 봉선화가 마음에 들어 지금도 변함없이 '봉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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