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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탈리아 여행 푸치니의 고향 ‘루카’

곽노은
푸치니와 그의 작품 이름의 호텔과 레스토랑 즐비

루카에는 푸치니 레스토랑이 있다. 정통 토스카나 요리로 유명한 별 4개짜리 레스토랑이다. 푸치니 호텔과 나비 부인(Madama Butterfly) 카페도 존재한다. ‘투란도트’란 레스토랑도 눈에 띈다. 푸치니(1858년 12월 22일생)가 태어난 도시이기 때문이다.

푸치니 레스토랑 바로 앞에는 푸치니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복원 1979년 일반에 공개한 것이 현재의 푸치니 박물관이다. 내부에는 오페라 악보, 가족 사진, 투란도트의 의상, 그가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 등이 놓여 있다. 하지만 사진촬영은 허가되지 않아 내부사진은 찍지 못한다.

오페라는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베토벤, 모차르트 등 대작곡가들도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오페라계를 이끌어 가는 작곡가는 단연 베르디와 푸치니라 말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푸치니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토스카, 라 보엠, 나비부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4개 중 1, 2, 4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푸치니가 태어날 당시 푸치니 아버지는 ‘산 마르티노 성당’의 악장이었다. 5대에 걸친 음악가 집안이었으므로 그가 음악을 배우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푸치니가 6살이 되기도 전에 병사하고 말았다. 집안에는 어머니와 푸치니 외에도 6명의 형제 자매들이 더 있었다. 그는 어려서 부터 가난을 알게 됐지만, 그럴수록 더욱 음악공부에 매진하여 실력을 쌓았다.

그러던 18살 되던 해, 피사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다행히 큰 삼촌의 후원과 마르게리타 여왕의 장학금으로 밀라노 왕립 음악원(현 베르디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그는 ‘미사 글로리아’라는 멋진 졸업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미사 글로리아는 아름다운 연주와 합창 때문에 연주자와 합창단이 먼저 은혜를 받는 작품이다. 26세 때는 오페라 ‘요정 빌리’를 작곡한다. 요정 빌리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이에 베르디의 후계자를 찾던 리코르디 출판사는 푸치니를 전속 작곡가로 끌어 들였다.

그러나 계속된 에드가르(오페라)의 실패로 출판사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에 이른다. 푸치니에게 위기가 찾아 온 것이다.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으로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큰 원인이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현악 4중주곡, 국화(Crisantemi)를 발표한다. 1893년(35세)에는 ‘마농 레스코’를 완성하고 토리노에서 초연 대성공을 거둔다. 마농 레스코는 대본 작성에만 6명의 손을 거치는 등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이다. 이로 인
해 푸치니는 명작 시대로 들어가게 됐다.

명작 시대의 첫 작품은 1896년, 토리노(레조 극장)에서 초연한 라 보엠(La Boheme)이다. 그 뒤를 이어 1900년에는 로마의 콘스탄치 극장에서 토스카(Tosca)를 발표한다.

1904년에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나비 부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스칼라 극장에서의 초연은 대실패로 끝났다. 이전 작품과 흡사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화가 난 푸치니는 다시는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초연에 실패했던 나비부인은 몇 번의 개작 후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현재는 전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로 군림하고 있다.

그 후에도 푸치니는 1910년 ‘서부의 아가씨’, 1917년 ‘제비’ 1918년에는 ‘일 트리티코’를 발표한다. 일 트리티코는 세 개의 대조적인 1막짜리 오페라인데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의 세 작품이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그의 마지막 오페라이자 유작이다. 그는 이 작품을 작업하던 중 브뤼셀에서 1924년 11월 29일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제3막의 류가 죽는 장면 까지만 작곡한 푸치니는 마지막 2중창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초연은 1926년 4월25일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공연됐다. 푸치니가 세상을 떠난지 1년 6개월 뒤의 일이다.

줄거리는 중국공주의 신랑이 되기 위해서는 왕자 신분에 3가지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만약에 못 풀면 목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동안 참수된 왕자만 13명이다.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는 투란도트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죽음을 무릅쓰고 도전, 수수께끼를 모두 맞춘다.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추면 목숨을 바치겠다고 답한다. 투란도트는 즉시,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 전에는 ‘아무도 잠들지 말라’고 베이징 시내 전역에 명령을 내린다. 칼라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의 아버지 ‘티무르’와 몸종 ‘류’ 뿐이다. 공주에 대한 사랑과 승리를 확신한 칼라프는 당당히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 이 승리의 아리아가 바로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다.

세계 최고의 ‘칼라프’로는 프랑코 코넬리, 마리오 델 모나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있다. 그러나 ‘네순 도르마’를 전세계에 알린 사람은 브리튼스 갓 탈렌트의 ‘폴 포츠’라 말할 수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그의 네순 도르마는 감동 그 자체다. Vincer! Vincer! 나는 승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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