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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DJ정신'의 진실과 오해

김용현/언론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은 뒤 김대중 대통령은 서둘러 광주를 찾지 않았다. 1971년 국회의원 지원 유세차 갔던 이후 16년 만에, 그리고 광주사태가 있은 지 7년이 지난 1987년 9월에서야 비로소 5·18묘역을 방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나는 5.·8 유가족과 부상자들을 껴안고 그냥 울어야 했다. 얼마를 울었던지, 그때의 광경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김대중과 광주'를 거의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광주를 왜 그렇게 늦게 찾았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누구보다 광주를 사랑했지만 광주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광주의 민심을 자극할 생각이 없었으며 끔찍한 폭거 속에서도 비폭력, 비용공, 비반미로 일관한 광주시민들을 그저 한없이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다.

요즘 한국의 야당 인사들은 무슨 때만 되면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광주를 방문한다. 정치하기가 쉽지 않으니 가서 한 수를 배워 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저마다 DJ의 적자임을 내세우고, 저마다 호남이 기반인 당에서 자기세력을 넓히기 위한 행보로 그렇게 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가 않는다. 심지어 선거철이 되어 공천을 못 받았다고 당을 뛰쳐나가거나 분당을 획책하면서도 DJ 정신을 파는데는 역겨움마저 느낀다.

광주나 호남을 사랑하는 것이 DJ정신인 건 맞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거기에만 매몰돼 있지 않았으며 그의 시야는 국경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DJ정신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화해와 통합이다. 그의 저서 '나의 길 나의 사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춘향이의 한은 이 도령과 다시 재결합하는 것이지 결코 사또에 대한 보복이 아니다'고 했다. 그 분의 모진 고난과 핍박의 세월 끝에 얻어낸 용서와 상생(相生)의 윤리다.

김대중 대통령이 펼쳤던 정책의 바탕에는 언제나 '애민(愛民)'이 있었다. 그가 국민을 상대로 연설할 때 늘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이라는 표현을 썼다. 국민에 대한 진솔한 사랑은 집권 후 주요 업적인 민주주의 정착과 시장경제의 활성화, 남북통일과 국민 복지의 기반 조성으로 나타났다.

4·29 재보선 이후 야당이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수는 하나만 같으면 동지로 보고 진보는 하나만 다르면 적으로 본다'더니 서로 욕설을 해대는 당 지도부의 저급한 행태는 마침내 '봉숭아 학당'이라는 비아냥을 받을 정도가 돼 버렸다. 보수 언론들은 정부의 무능과 집권 여당의 부패 리스트에는 눈을 감아주면서 야당의 분열상에는 호재를 만난 듯 법석을 떨고 있다.

야당이 여기에 놀아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진정으로 DJ 정신을 이어가자면 같은 동지끼리 똘똘 뭉쳐 정권교체를 이룬 다음에 10년 동안 뒷걸음친 민주주의와 민생경제를 살려내고 맥이 끊어진 남북관계를 복원함으로써 민족의 역량을 극대화시켜나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고 초대 비서실장에 영남 인사를, 통일부 장관에 극보수인사를 기용했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이희호 여사도 최근 'DJ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감사하기는 하지만 정쟁논리로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호남 홀대니, 호남정치 복원이니 하는 말도 호남인들에게 이제는 자존심 상하는 말로 들려야 한다.

'친노 패권'은 단호히 척결해야 하지만 호남 정치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분당설은 더욱 배격해야 될 일이다. 인종과 계층 간 갈등이 심각한 미국 정가에도 백가쟁명은 있으나 분당 이야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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