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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주교회 이건숙 수녀 인터뷰…"순교자의 피가 밴 나가사키 성지로 오세요"

박해속에 지켜낸 일본 가톨릭
삶과 죽음의 현장 고이 간직해

일본 가톨릭에는 순교성인이 42명(한국은 103명), 성인품을 기다리는 순교복자가 393명이 있다. 이 중에는 임진왜란때 포로로 끌려갔다가 신자가 된 후 순교한 조선인 복자가 15명이나 있다. 가장 혹독한 박해가 있었던 지역이 지금의 나가사키 대교구가 자리한 곳으로 당시 상황을 전해주는 순교성지들이 많다. 한국의 예수성심시녀회 소속의 이건숙(율리엣따ㆍ62) 수녀는 8년째 그곳에 파견되어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순례자들에게 일본의 가톨릭과 순교역사 그리고 그들의 신앙의 삶을 전해주는 소임을 담당해오고 있다(일본 주교회 한국순교자 관련 자문위원). 지난 2일 미국을 방문한 이건숙 수녀를 만났다.

- 일본 가톨릭에 대해 소개하기는 처음이다. 일본에 이처럼 많은 순교자가 있었는지 몰랐다.

"저 역시 파견 소임을 받기 전까지 관심도 적었고 몰랐다. 그러나 알게 되면서부터 일본인 가톨릭 신자들의 정말 뿌리 깊은 신앙태도에 감동받았다. 한국보다 먼저 가톨릭을 받아들인 나라이다."

- 한인 신자들이 많은가.

"이미 오래전에 일본인들과 혼인으로 섞였다. 모두 일본인으로 대한다."

- 한국의 천주교 박해 때 순교자들과 차이점이 있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단호한 선택'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초창기 로마 박해 때 순교자부터 시작해서 '최초의 순교자'인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같은 한마음인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성인품을 인정할 때 초자연적인 개입(하느님의 개입)인 기적이 일어났는가를 기준으로 한다.순교자는 이같은 검증없이 모두 복자를 거쳐 성인품에 올리는 이유는 순교자체가 인간의 힘으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이신 같은 하느님의 하시는 일이므로 인종이나 시대나 문화를 뛰어 넘어 차이가 없다."

- 박해는 언제 시작되었나.

"일본의 가톨릭 역사를 보면 예수회 창립자인 성 이냐시오와 함께 창립멤버였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스페인 귀족출신으로 예수회 신부)가 동양에 가톨릭 선교를 위해 일본의 최남단인 가고시마라는 곳에 1549년 8월15일 5명의 일행과 함께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1년 후에 지금의 나가사키 항구로 들어가 그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선교활동을 하여 많은 영주들을 영세시켰다. 당시 기록을 보면 그 일대 신자수가 점차 증가했다. 이것을 두려워한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1587년에 그 지역 일대 영주들에게 가톨릭 금지령을 내려 외국의 선교 사제들에게 '일본은 (우리의) 신이 만든 나라다. 외국의 신은 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추방시키면서 250년이 넘는 가혹한 박해시대가 왔다. 1886년 외국에 개방하면서 파리외방선교회 신부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특히 나가사키 지역에서 화형, 거꾸로 땅에 묻기, 끓는 온천에 넣어 죽이기, 참수, 교살 등 온갖 잔인하게 신자들이 순교했고 그 중에는 일본인으로서 사제가 된 사람들을 비롯한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본인들이다."

- 200년이 넘는 박해동안 어떻게 그들은 신앙을 지켰나.

"사제가 없는 250여년 동안 평신도들이 비밀조직을 만들어 가톨릭 전례(사순절ㆍ부활절ㆍ성탄절)를 담당하는 사람, 세례를 주는 사람, 신자 가족들과 연락을 담당하는 사람을 정해 7대 째까지 이같은 방법으로 신앙을 지켜왔다. 만일 이같은 평신도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일본의 가톨릭 교회는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요구하는대로 불교 혹은 신도 신자로서 등록을 했지만 내적으로는 계속 신앙생활을 지켰다."

- 일본의 가톨릭 신자는 얼마나 되나.

"인구의 0.3%가 안된다. 그 중의 거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앙의 탄생지이며 순교지인 나가사키 교구내에 살고 있다. "

- 순교성지 안내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이 땅은 순교자의 피를 담기 위해 마련된 '그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사람의 피가 배어있는 곳이다. 이 현장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나의 소임은 그들이 어떠한 하느님의 사랑을 가졌기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고 하느님을 택하는 거룩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걸 생각하도록 그들의 삶과 죽음의 현장을 말해주는 것이다.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는 걸 느낄 때 가장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대하는 매일의 태도가 분명 달라졌을 것임을 믿는다."

- 이곳 한인에 대한 인상은.

"미국은 처음이다. 미사를 함께 드리면서 힘겨운 이민생활 속에서 막다른 상황들도 많았을 텐데 그 때 신앙을 버리지 않는 '위대한 선택'을 한 것은 순교자와 다를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뭉클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같은 순교자로서 꼭 한번 나가사키 성지를 방문해 주었으면 좋겠다(웃음)."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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