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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녀가 공휴일 제정 운동…마더스 데이의 유래

참전군인과 어머니 초청 행사가 시초
1914년 연방휴일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은 마더스 데이, 즉 어머니의 날이다. 미국 어머니날의 시초는 남북전쟁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웨스트버지니아에 거주하는 앤 자비스는 ‘마더스 데이 워크(work) 클럽’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지역 여성들에게 올바른 육아 방법 등을 소개했다. 그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 1868년에는 ‘마더스 프렌드십 데이’ 행사를 열고 남군과 북군 참전자들과 어머니들을 초청해 화해의 장을 만들었다.

이후 앤 자비스의 딸인 애나 자비스(사진)는 숨진 그의 어머니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행사를 추진했다. 1908년 5월 애나는 웨스트버지니아 그래프튼 지역의 한 감리교회에서 첫번째 마더스 데이 행사를 개최했다.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백화점을 운영하던 존 워너메이커가 재정후원을 했다.

평생을 미혼으로 지내 자식이 없었던 애나는 이 행사가 달력에 들어가는 공휴일이 되길 원했다. 그녀는 신문과 정치인들에게 미국 공휴일에는 남성을 기리는 휴일만 너무 많다고 주장하며 로비를 펼쳤다. 이러한 노력으로 1912년부터 지역 정부 차원에서 마더스 데이를 공식 휴일로 정하기 시작했고 1914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연방 차원의 공휴일로 제정했다.

애나의 원래 계획은 하얀 카네이션을 가슴에 걸고 어머니나 교회를 찾는 풍습을 만드는 것이었으나 꽃집들과 편지 카드 회사들이 이 공휴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들어 애나는 상업화된 어머니날에 거부감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꽃이나 카드, 사탕 등 선물을 사지 말라고 호소했으나 이미 하나의 문화가 돼버렸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1948년까지 ‘마더스 데이’를 도용하는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공휴일에서 제외해 달라는 대정부 로비를 벌이다가 가진 돈을 다 잃기도 했다.



이후 마더스 데이는 어머니를 기리는 행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과 아동 등 소수자 인권을 대변하는 날로 사용되기도 했다.

마더스 데이는 미국에서 가장 전화 통화량이 많은 날이기도 하다. 히스토리 채널은 가장 통화량이 많을 때에는 37%까지 기록한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의 2010년 기사에 따르면 마더스 데이 당일 통화량은 1월 1일보다 8%, 발렌타인 데이보다 11%, 할로윈보다 62% 많다.

김영남 기자
kim.youngnam@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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