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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푸치니의 고향 이탈리아 루카 

수녀의 아들로 바로크 시대를 예고한 화가 필리피노 등 유명

케네디 센터에서 ‘라 보엠’을 본 적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오페라 중 하나인 ‘라 보엠’은 푸치니가 만든 4번째 오페라다.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바느질하는 처녀 미미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 라 보엠. 병약했던 미미는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가졌던 다락방에서 마지막 눈을 감는다는 슬픈 이야기다. ‘내 이름은 미미’, ‘그대의 찬 손’, 그리고 로돌포의 마지막 울부짖음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며 푸치니의 고향인 루카(Lucca)를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카는 피사에서는 11마일(17.7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피렌체에서는 기차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도착해 보니 중세에 지어진 성벽과 건축물들로 가득찬 이곳은 매우 아름다운 도시였다. 호텔에서는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고 했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빌리면 한 시간 3유로, 하루 종일은 15유로를 받는다. 루카는 성벽 위로 자전거 길이 있어 길을 따라 돌면 구시가 전체를 한바퀴 돌게 된다. 성벽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1504년 부터 짓기 시작해 1648년에 완공했다. 2.5마일에 이르는 성벽 산책로가 시민들에게 개방된 것은 1800년대 였다고 한다. 고즈넉한 성벽 길을 자전거로 달리다 보니 기분이 매우 상쾌해 진다.

‘알프레도 카탈라니’는 루카에서 푸치니 보다 4년 먼저 태어난 작곡가다. 대표작으로는 로렐라이(Loreley)와 라 왈리(La Wally)가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라 왈리에서의 ‘나 이제 멀리 떠나리(Ebben! Ne Andro Lontana)’라는 곡이다.

왈리역은 소프라노의 양대 산맥인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가 역시 최고지만 이 아리아 만큼은 흑인 소프라노 ‘윌헬메니어 위긴스 페르난데즈’가 가슴 절절하게 노래했다. 1981년 발표된 프랑스 영화 ‘디바’에서 첫 장면에 흐르는 곡이 바로 이 아리아다. 토스카니니는 첫 딸에게 ‘왈리’라는 이름을 붙힐 정도로 13살 연상의 카탈라니를 존경했다. 왈리는 후에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인 호로비츠와 결혼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카탈라니는 39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성벽 길 한복판에 세워진 이 청동상은 그의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시에서 세운 것이다.



루카에는 직접 올라 갈 수 있는 높은 탑이 두 개 있다. 그 중 ‘귀니지 탑’에 올랐다(입장료 4유로). 귀니지는 영주까지 배출한 루카의 명문 집안이다. 귀니지 탑을 비롯한 타워와 첨탑은 중세시대 이탈리아에 250개 이상이나 있었다고 한다. 탑 위가 정원으로 꾸며져 있는 이곳에서는 360도 각도로 시가지 전체를 조망 할 수 있다. 아! 탑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고도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멀리 보이는 건물이 루카의 두오모인 ‘산 마르티노 성당’이다.

원형극장 광장은 말 그대로 원형극장이 있던 장소였다. 현재는 광장 겸 시장으로 바뀌어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다. 광장 앞에는 ‘산 프레디아노 성당’이 위치해 있다. 성당 전면부의 모자이크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는 천사가 날개를 펼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12명의 제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본당 중앙 전면에는 유리관으로 만든 ‘성녀 지타’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성녀 지타는 13세기 루카에서 활약한 하녀와 가사도우미의 수호성인이다. 그녀는 파티넬리 가문의 하녀로 주인의 신임과 허락을 받은 후, 가난한 이웃들을 도왔다고 한다. 성인들의 순교를 조각해 놓은 대리석 침례탕은 12세기 부터 사용해 온 중요한 조각품 침례탕이다. 루카에서는 두오모 보다 더 화려한 곳이 ‘산 미켈레 성당’이다. 8세기에 최초 건설된 이 성당은 웅장한 대리석 파사드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내부에는 12세기에 제작된 예수님이 못 박혀 있는 십자가가 중앙제단에 설치돼 있다. 작은 예배당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동상 등 아름다운 성화들이 그려져 있다. 그 중에는 필리피노 리피(Filippino Lippi)의 작품인 팔라 마그리니(Pala Magrini, 1483)도 보인다.

필리피노는 그의 아버지 ‘프라 필리포 리피’와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에게 그림을 배운 화가로 그의 작품은 워싱턴, 로마, 피렌체, 부다페스트 등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 프라(수도사)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는 당시 유명한 화가겸 수도사였다. 1456년, 필리포(50세)는 프라토에 있는 산타 마게리타 수녀원 교회에서 젊고 아리따운 루크레치아 부티(22세) 수녀를 보고 단번에 마음을 빼았겼다. 필리포는 성모(聖母)를 그리려면 모델이 필요하다며 교회에 간청,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집으로 납치,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 났다. 그가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로 바로크 시대를 예고한 필리피노 리피다. 당시 이 사건은 프라 필리포의 투옥과 고문 등으로 큰 후유증을 남겼지만 코시모 데 메디치의 주선으로 교황의 특면장이 내려 졌다. 이렇게 해서 리피 가문에서는 두 명의 위대한 화가를 배출하게 된 것이다. 부티 수녀를 그린 필리포 리피의 ‘성모자상’은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가면 감상할 수 있다.

글, 사진: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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