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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폭동’ 약탈·방화에도 한인들 희망 포기 안해

폭동피해 현장 르포
“시위대 안 무서워요…장사도 포기 안 합니다”
“데모 참가자들, 태어날 때부터 지켜본 동네 아이들일뿐”

2일 오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의 한 리커스토어 앞. 주인 이한엽씨가 뙤약볕 아래 쭈그려 앉아 물을 받아 놓은 양동이 안의 양주병을 씻고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킴스 마켓’은 지난달 27일 볼티모어 폭동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씨는 “이거라도 팔아야죠. 약탈당하고 깨진 병들 중에 그나마 괜찮은 애들이에요”라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방탄유리와 이중 삼중에 달하는 보안 장치는 폭도들이 들고 온 ‘해머’에는 역부족이었다. 흑인 폭도 두 명이 가게 안 현금인출기를 들고 성문을 부수듯 가게 내부 문을 부수는 장면 역시 CCTV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씨는 “맥주처럼 값싸고 무거운 술은 놔뒀더라. 한동안은 맥주 찾는 사람밖에 없을 것 같다. 폭도들이 양주와 담배를 내다 팔 게 분명해 3개월간은 장사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볼티모어 중심부의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왕복 4차선 도로인 이곳에는 각종 미용·잡화 가게가 쭉 들어서 있다. 지난달 27일 벌어진 폭동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며 프레디 그레이 사망과 관련, 경찰에 대한 기소가 확정된 이후인 2일 오후에도 시위대의 행진 루트로 사용됐다.

이곳에서 인조 가발 등을 판매하는 ‘뷰티 포인트’라는 가게 안은 폭도들이 진열대의 가발을 탈취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가게 안 좁은 통로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인 정지호씨는 “하룻밤 만에 35만 달러의 피해를 봤다. 저쪽 벽면에 걸려있던 사람 머리로 만든 가발들은 죄다 털렸다. 짧은 머리는 20달러, 긴 머리는 100달러에 달하는 등 비싸다 보니 머리카락이 다 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가 확산된다는 얘기에 일찌감치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피했다. 집에 있는데 보안 업체에서 침입자 때문에 알람이 울린다고 계속 전화가 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뷰티 포인트’ 옆에 있는 방인철씨가 운영하는 ‘홉킨스 뷰티 서플라이’. 가발 등 각종 미용 용품을 판매하는 이곳은 여느 가게와는 달리 정상영업 중이었다. 방 씨는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뒷문을 열어 놓은 채 덤덤히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이틀 전 검찰의 프레디 그레이 사망 관련 경찰 전원 기소 방침이 발표됐으나 이날 시위는 잠잠해지지 않았다. 볼티모어 상공에는 경찰 헬기가 굉음을 내며 저공 비행을 하고 있었고 골목골목마다 경찰 인력이 배치돼 있었다. 이날도 300여 명의 시위대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선상을 행진하며 ‘프레디 그레이를 위해 밤낮으로 싸우겠다’를 외쳤다. 시위에 참여한 40대 흑인 여성 케시 베넷은 “흑인들은 직업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데 정부는 하는 게 없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40대 남성 샐 아이디아는 “(기소된 경찰 6명 중 세 명이 흑인인 것과 관련) 이것은 인종문제가 아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차에 타고 한인 피해 업소와 시위 현장을 이동하는 내내 주변에는 경적 소리가 울려 계속 긴장하며 운전해야 했다. 알고 보니 앞차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경적이 아니라 주변 시위대들을 격려하는 경적이었다.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선상의 업소들을 제외한 나머지 업소들이 있는 동네는 말 그대로 ‘흉흉’했다. 불타버린 가게 앞을 막아 놓은 나무판자, 폭동 이전부터 도시를 떠난 사람들로 인해 비어있는 주택들의 모습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인 남성 세 명이 한 팀으로 취재 현장을 찾았으나 주변의 시선과 이유 모를 위압감에 주위를 계속 살펴야 했다. 주택가에 주차하려는데 동네 주민들이 빤히 쳐다봐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시위대 행렬이 지나가는 큰길은 차량이 전면 통제됐으나 불만을 표하는 운전자는 없었다. 맑고 화창한 날의 대낮이었지만 도시의 이미지는 어두웠다.

볼티모어 시내의 교회에서는 음식 등 물자 기부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시위대와는 별개로 도시 정상화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비록 소수지만 길거리 물건을 쓸어 담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전소돼 검게 그을린 하얀 미니밴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아직 미소가 가득했다.

이날 만난 한인 피해업주들은 소위 ‘아메리칸 드림’ 터전을 잃어 좌절감에 빠져 있다기보단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했다.
홉킨스 뷰티 서플라이 방인철씨가 담담히 말했다.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어요. 시위대가 무섭지도 않아요. 데모하는 사람들 찬찬히 들여다봤어요. 태어날 때부터 지켜본 우리 동네 아이들일 뿐이에요.”

김영남 기자
kim.youngnam@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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