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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저 땅을 버리지 마소서"

현장 속으로-잭슨하이츠 네팔인 밀집 지역을 가다
밤마다 1000여 명 모여 촛불 집회
생업 제쳐두고 구호품 수집 안간힘

펜라췌앙 셰르파(32.사진)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태어났다. 그는 히말라야 최고봉 안나푸르나를 오르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산악인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20대 청년이 된 펜라췌앙은 마음을 바꿨다. 지구 반대편의 도시 뉴욕에서 새 삶을 꾸리고자 했다. 6년 전 뉴욕에 온 그는 주유소 등지에서 일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날 고향에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대지진으로 사방이 흙더미로 변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여동생과는 연락이 두절됐다.

강도 7.8도의 대지진이 네팔을 휩쓸고 간 지 6일째. 네팔 정부에 따르면 30일 현재 사상자는 1만7000여 명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5844명이 숨졌다. 구조 작업이 지속되고 있지만 사상자는 계속 늘고 있다. 카트만두는 한순간에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주민 30만 명 이상이 도시를 떠났다. 텐트조차 모자라 많은 이재민들이 거리에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펜라췌앙은 "카트만두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대지진 이후 퀸즈 잭슨하이츠도 슬픔에 잠겼다. 잭슨하이츠는 전국 최대의 네팔 이민자 밀집 지역이다. 뉴욕 일원 네팔 이민자 6000여 명 가운데 3000여 명이 이곳에 살고 있다.

지난달 29일 네팔계 노인들은 잭슨하이츠에 있는 사찰을 찾아 지진 후 세 번째 추모 기도를 올렸다. 기도문이 이어지는 동안 기부함은 빠르게 채워졌다. 노인들을 이끌고 온 수닐 구룽은 "네팔 전통에 따라 사람들은 액수가 홀수인 금액을 기부한다"고 말했다. 해가 저물 때쯤 되자 1000여 명의 네팔.인도.티벳 이민자들은 촛불을 밝히고 추도문을 읽었다. 일부는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업스테이트 주유소에서 일하던 펜라췌앙은 대지진 소식을 접하자마자 사촌형 밍마 셰르파가 있는 잭슨하이츠로 달려왔다. 구호 물자를 모아 카트만두에 보내기 위해서다. 밍마가 운영하는 휴대전화 액세서리숍 '셰르파 컬렉션(Sherpa Collections)' 지하실은 고향의 이재민들을 위한 구호품 저장소가 됐다. 펜라췌앙은 "당분간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소식을 기다리며 이재민 구호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네팔.인도.티벳 청년들로 구성된 비정부기구 '허트 비트(Heart Beat)'는 대지진 이후 매일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구호물자를 밴에 실어 날랐다. 허트 비트는 펜라췌앙이 카트만두에 살던 당시 갈 곳 없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친구들과 만든 단체다. 카트만두와 뉴욕을 합치면 봉사자가 1000여 명에 이른다. 1일에는 미동부 전역에서 수집된 수백 상자의 구호물품들을 카트만두로 보낼 예정이다. 두 번째 전달이다.

가족들 생사 몰라 애타는 나날 보내
15세 소년 기적 생환에 한가닥 희망


네팔과 인접한 티벳 이민자 단체 RTWA(Regional Tibetan Women's Association)의 지원으로 구호품은 항공편으로 빠르게 운송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구호품은 비상약품과 물 영양보충제와 손전등이다. 옷가지는 이미 많이 전달됐고 한정된 비행기에 싣기에는 무게도 많이 나간다. 생명 유지에 필수인 의약품과 먹거리들을 가장 우선으로 전달해야 한다. 사촌형 밍마는 "많은 아이들이 지진 후 설사병에 시달려 탈수로 생명이 위협하다는 연락을 고향 친구들로부터 받고 있다"고 했다. 펜라췌앙은 "최대한 구호품을 많이 전달할수록 어디에 있을지 모를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도 빠르게 도움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다"며 "그래서 밤새도록 물건들을 실어 나른다"고 말했다.

펜라췌앙에게 카트만두는 애증이 담긴 고향이다. 20대였던 셰르파는 또래 친구.사촌들과 조금 더 민주적인 세계를 꿈꾸며 뉴욕에 왔다. 당시 네팔은 정부와 무장단체 마오이스트(Maoist) 사이 갈등으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정치적 혼돈은 많은 젊은이들의 교육.취업.경제 상황을 불안 속에 몰아넣었다.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과 유럽 등지로 떠나갔다. 잭슨하이츠와 엘름허스트 우드사이드에는 네팔.티벳에서 정치적 난민 자격으로 이민온 젊은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펜라췌앙도 마찬가지로 친구.사촌들과 뉴욕에 왔고 누나는 독일로 옮겨갔다. 그래도 어머니와 여동생이 고향 카트만두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셰르파는 늘 뉴욕에서 돈을 모아 가족들에게 보내고자 했다. 펜라췌앙은 "그런데 뉴욕 생활이 만만치 않아 여태까지 보낸 돈은 단 500달러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비자도 오래전에 만료돼 불법체류자가 돼버렸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보탬이 되고자 했는데 그 전에 세상을 떠난 게 아니기를 기도할 뿐"이라며 말을 멈췄다.

그는 "나무를 보면 위에는 나뭇잎이 있고 아래는 뿌리가 있다"며 손가락으로 한 나무를 가르켰다. "나무처럼 사람들은 모두 정해진 자리가 있는데 가장 아래 뿌리가 지금 나와 카트만두 이재민들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트만두 도시 전체가 멈추며 뉴욕에서 공부를 하고 사업을 하고자 했던 미래의 꿈이 멈췄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아무것도 꿈 꿀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지만 이것도 본업으로 받아들이고 손이 닿는 데까지 이재민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비탄에 빠진 네팔 이민자들에게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6일을 보낸 15세 소년 펨마 타망이 30일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다. 잭슨하이츠에서는 지금도 새로운 기적을 바라는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조은 기자

lee.joe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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