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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복고열풍…요즘 홍대 앞 주점들엔 70년대 서울도 있고 100년 전 도쿄도 있다

오래된 새로움, 빈티지

오래된 느낌 내는 ‘빈티지’ 건축들
‘디자인 그룹 피플’ 이 주도한 작품
초반엔 생소해 주인들 울상도
건축 땐 고증·소품 연구 철저히 해
외관에 맞는 가게 스토리도 중요
강남선 깔끔한 모던 빈티지 선호


장재훈(34·웹디자이너)씨는 17일 동료와 함께 홍대 근처의 서교동 일대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몇 년 전까지 주택가였던 골목길에 오래된 일본식 목조 건물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모두 이자카야나 고깃집 같은 술집 건물로 골목이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자들로 북적였다. 건물에 다닥다닥 붙은 장식용 간판과 백열등에서 흘러나오는 주황색 불빛 때문에 거리는 더 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장씨는 “일본 여행을 갈 때 기대하고 가는 일본 골목의 모습”이라며 “어쩌면 일본보다도 더 일본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몇십 년은 된 듯한 오래된 건물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건물들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이다. ‘맛있는 교토’가 4년, ‘도쿄야끼’가 3년이 됐고 ‘어시장 삼대’는 이달에 문을 열었다. 인근에 있는 ‘개화기 요정’도 지어진 지 반년이 채 안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건물이 오래된 정취를 자아내는 이유는 ‘빈티지 디자인’ 덕분이다. 와인의 생산연도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한 빈티지(vintage)는 오래되고 값진 것, 유서 깊은 것이란 뜻으로 의미가 확장돼 쓰인다. 인테리어에선 어제 지었지만 마치 몇십 년은 된 듯 오래된 느낌을 자아내는 디자인 양식을 뜻한다. 홍대에서는 일본식 목조 건물 느낌의 이자카야나 우리나라의 1970~80년대식 분위기를 풍기는 카페나 술집 등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런 디자인을 홍대에서 처음 주도한 이가 ‘디자인 그룹 피플’의 김석 대표다.



그는 2000년대 초반 곧 철거될 것 같은 분위기의 ‘마포나루 냉면’ ‘은하수 다방’ 등을 시공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은하수 다방을 완공했을 때는 천장과 벽에 마감이 안 된 채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것을 보고 가게 주인이 김 대표에게 “우리 언제 개업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 대표가 “이게 끝”이라고 답하자 주인이 울상을 지었을 정도로 당시엔 생소한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 은하수 다방은 낡고 오래된 정취로 인해 청춘 남녀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떠올랐다. 가수 ‘10㎝’의 노래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에 나오는 ‘사랑은 은하수 다방 문 앞에서 만나 홍차와 냉커피를 마시며 매일 똑같은 노래를 듣다가 온다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홍대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삼거리 포차’ 역시 이 회사의 작품이다. 삼거리 포차는 연예기획사인 YG 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곳이다. 기껏 최신식으로 지어놓은 빌딩의 1~2층을 70~80년대 분위기의 낡은 건물로 바꾸겠다고 하자 회사 측에서 난감해 했다고 한다. 결국 양현석 대표의 결단으로 현재의 삼거리 포차가 탄생했다. 1층은 70~80년대 저잣거리의 느낌으로, 2층은 옛 한옥의 가정집 분위기로 지어졌다. 실제 구옥(舊屋)을 철거하는 곳에서 구입한 대문과 문짝, 목재 장식들에 새 목재를 섞어 짓고 교련복과 학생 가방, 못난이 인형, 옛날 TV 등 당대의 소품을 여기저기 배치했다. 김 대표는 “빈티지 디자인 기법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실제 세월의 손때가 묻은 자재의 힘을 따라갈 수 없다”며 “‘진짜’ 빈티지 자재와 소품에 새것을 섞어 오래된 것에 어울리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김 대표는 옛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는 기존의 주택 건물을 증축해 옛날의 구조를 그대로 살리는 것을 선호한다. ‘맛있는 교토’ ‘개화기 요정’ 등도 기존의 건물을 증축한 것으로 내부에는 예전 가정집의 바닥이나 천장 벽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 대표는 “집을 철거하고 새로 지으면 비용이나 시간이 오히려 절감될 수 있지만 지은 지 수십 년이 된 집의 역사성이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조건 낡고 오래돼 보인다고 해서 빈티지 디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증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김 대표는 “일본식 건물을 지을 땐 해당 업주와 함께 몇 차례 일본을 견학해 처마의 각도나 자재 등을 연구하고 내부 인테리어에 쓸 빈티지 소품들을 수집해 왔다”고 말했다.

외관뿐 아니라 이야깃거리를 입히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삼거리 포차’를 제외하고 디자인 그룹 피플에서 시공한 가게들은 김석 대표가 가게 이름까지 직접 지었다. ‘어시장 삼대’는 실제 삼대가 운영하는 횟집이 아니고 ‘복자네’ 사장의 이름은 복자가 아니다. 김 대표는 “허름한 외관, 흰색 국물이 있는 음식, 변함없는 메뉴가 맛집의 3대 요건”이라며 “빈티지 디자인은 단순한 디자인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콘텐트와의 궁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빈티지 디자인은 홍대뿐 아니라 강남 지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홍대가 낡고 오래된 느낌의 빈티지 스타일이라면 강남 지역에선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한 ‘모던 빈티지’를 선호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지오쿠치나’나 용인시 수지구의 ‘멜팅 포인트’ 등을 시공한 모던 크래프트의 송일욱 대표는 10여 년 전 본인이 직접 카페를 운영하면서 선보인 빈티지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자 아예 빈티지 인테리어로 방향을 틀었다.

송 대표는 “유럽의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산업 혁명 시기의 공업적인 요소를 섞은 빈티지 디자인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세월의 때가 묻은 듯한 페인트 기법과 철선이나 징 등의 철재 제품을 이용해 유럽의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카페나 100~200년 된 상점 같은 공간을 연출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런 빈티지 디자인이 인기를 끌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겸 빈티지숍을 운영하고 있는 박혜주 GU 대표는 “디지털 시대에 따뜻한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찾는 사람이 는 데다 세계적인 불경기로 인해 있는 그대로를 살리면서 최소한의 꾸밈만을 주는 형태의 인테리어가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안(老顔)’이 시간이 흐르면 ‘동안(童顔)’이 되는 것처럼 빈티지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진가를 발휘한다. 모던 크래프트의 송 대표는 “빈티지 디자인은 햇빛과 조도에 의해 다양한 색감과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

맛있는 교토’를 운영하고 있는 임경재 대표는 “일단 맛있고 멋있어야 손님을 끌 수 있는 홍대 상권의 특성상 외관 디자인의 덕을 톡톡히 봤다” 고 말했다. ‘개화기 요정’을 방문한 이호형(35·프리랜서)씨는 “편안한 차림으로 술 한잔할 수 있을 것 같은 안락한 분위기에, 내부 구조가 노출된 독특한 실내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글=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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