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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ALK] 거장의 첫 걸음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수 년 전 디트로이트 공항에 친숙한 얼굴이 모델로 등장한 초대형 광고판이 걸렸다. 피아니스트 랑랑(Lang Lang)이었다. 클래식 음악가로서 그가 가진 젊은 에너지와 천재성이 대중적 인지도와 결합되어 커다란 상품 가치를 창출한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 차이가 있겠지만 랑랑이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중 선두에 섰다고 말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전 세계에 방문해보지 않은 나라가 없고 서보지 않은 콘서트홀이 거의 없을 정도이며 몸값 역시 최고 수준이다. 그의 활약상은 단지 콘서트홀에만 얽매이지 않고 굵직한 세계적 이벤트의 주인공로 등장하는 등 클래식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그는 늘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만나는 사람에게도 친절하다.

또 한 명의 대세 음악가를 말하라면 유자 왕(Yuja Wang)이다. 6살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10살이 되었을 때 이미 음대에 진학할만한 실력을 갖추었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 후 영재들만 들어간다는 커티스 음대를 졸업하던 2008년 당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수장이었던 사를르 뒤뜨와(Charles Dutoit)의 후광으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줄줄이 접수(?)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단박에 대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2011년 할리우드보울에서 열린 LA필하모닉과의 협연에서 연주자들이 통상적으로 입는 드레스를 버리고 뾰족한 하이힐에 몸에 붙는 붉은색 미니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그런 옷차림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이 무대 직후 LA타임즈는 물론 유럽과 뉴욕 그리고 한국 언론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선보였던 라흐마니노프보다는 이날 입은 파격적인 의상에 대한 갑론을박이 보도되었다. 유자 왕의 신기에 가까웠던 이날 연주에 대한 평가는 부차적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연주자들이 각광을 받는 시기가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조금씩 멀어지는 것은 어쩌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력과 매력을 가진 천재들이 계속 쏟아지기 때문이다. 필자의 10대 시절 전 세계를 호령하던 음악가들 가운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매니지먼트는 좋은 연주자보다는 새로운 매력을 가진 '차별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상품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떠나보낸다. 한 예로 유명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자리에 오른 한 지휘자가 구설수에 휘말리며 떠나게 되자 자기 회사 아티스트 명단에서 빼버린 일도 있었다. 상황은 변했고 이해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이다.



잠시 잠깐 주목을 받는 것보다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활동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증명하는 예가 있다. 피아니스트 매너햄 프레슬러(Menahem Pressler)는 피아노 실내악 연주에 역사적인 업적을 남긴 보자르 트리오의 창단 멤버로 수십 년 동안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의 연주가 담긴 음반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의 해석은 교과서이자 표본이 되었다.

프레슬러는 1923년생 한국 나이로 올해 93세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지금까지도 젊은 시절 못지 않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2015년 신년 음악회의 독주자로 그를 초청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총명하다. 건반을 유유히 걷는 깊은 주름 박힌 투박한 손의 극명한 대비가 빚은 모차르트를 그 누가 흉내낼 수 있을까? 그는 60년 동안 교수로 재직중인 인디애나대학교를 중심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오케스트라 협연 리사이틀 그리고 실내악 연주와 마스터클래스에 이르기까지 20대의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벅찬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연주와 연주 사이에 하루 이틀 시간이 생기면 인디애나로 날아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시 돌아오는 일도 다반사다. 웬만한 연주자는 60세 길면 70세 정도쯤 활동을 중단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주로 집중을 하지만 그에게 93이라는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연주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연습에 매진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프레슬러의 평소 연습량은 그가 가르치는 제자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거장의 자리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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