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후배 보듬던 그 선배가…충격의 동문들
'가디나 살해 사건' 세상 떠난 김소현씨
복음성가 연주자 활동
아들 때문 고민 많았지만
밝게 살으려고 항상 노력
남가주 서울대 음대 동문회에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어려움에 처한 후배를 도운 선배의 감동 스토리다.
한 여성 동문이 남편과 헤어져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됐다. 갑작스러워 살 길이 막막했다. 살림살이도 전 같지 않아졌다. 그때, 한 선배가 음식을 한아름 들고 찾아왔다.
선배는 “나도 혼자 애들 키워봐서 알아. 힘들겠지만 그래도 잘 먹어야지”라며 음식들을 텅 빈 냉장고에 채워넣었다. 선배의 따듯한 마음에 후배는 얼어붙었던 가슴 속 상처가 눈 녹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후배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랬던 선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난 19일 발생한 가디나 모친 살해 사건의 피해자 김소현(56ㆍ사진)씨가 그 선배다.
가슴 따뜻했던 김씨의 변고 소식에 서울대 동문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은 함께 모여 서로 위로했다.
숨진 김씨의 1년 선배인 음대 동문회장 서영란씨는 “믿을 수가 없다. 사건 전날 음대 야유회에도 소현이가 참석해 함께 웃고 즐겼는데, 세상에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야유회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다음에 또 만나자’ 웃으며 인사했는데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숨진 김씨는 동문들 사이에서 ‘인심 좋은 주방장’으로도 통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손수 음식을 준비해 대접하는 걸 즐겼다. 사건 하루 전 있었던 야유회 바비큐 파티에서도 사과를 갈아넣은 쌈장과 잡곡밥을 준비해 와 동문들의 입을 즐겁게했다.
음대 동문 유재각씨는 “사람이 많아 힘들 텐데도 흔쾌히 혼자 음식을 준비했다”며 “동문회 운영이 어려웠을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고 전했다.
숨진 김씨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만큼 밝은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음대 동문회장 서씨는 “소현이는 늘 호탕하게 웃었기 때문에 함께 있는 사람들도 덩달아 웃곤 했다”면서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만, 밝게 살고자 노력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안타까워했다.
피아노 연주자로도 실력을 인정받은 삶이었다. 서울대 기악과 76학번으로 피아노를 전공했던 김씨는 시카고와 위스콘신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2006년까지는 ‘레제투알(Les Etoiles)’이란 피아노 트리오 그룹을 결성해 연주가의 삶을 살았다. 성당에서는 복음성가 연주자로 활동하며 찬양 사역에 열심이었다. 5월에는 경기여고 합창단 한국 공연을 위해 한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함께 연주 활동을 했던 지인은 “피아노를 칠 때면 모든 걱정을 잊을 수 있다고 자주 얘기했었다”면서 “아들 때문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도 늘 음악으로 스스로 치유하던, 진정한 음악가였다”고 회상했다.
‘베풀 줄 알고 요리 솜씨 좋았던 사람’, ‘명랑하고 음악에 열정을 다했던 사람’. 비극적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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