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성패 좌우…'막강 권한' 뮤직 디렉터
20억원 고액 연봉에 업무비 횡령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수사로 관심 커진 '그들의 세계'
100만 달러대도 5명뿐… 평균 52만 달러
정상급들 지휘 한번에 4만~5만 달러
유명 지휘자는 두 세곳씩 디렉터 맡아
단원 채용·해고권 등 인력 관리 총괄
대신 명성 올려줘야 하는 막중한 자리
최근엔 운영기금 마련 역할 떠맡아
"음악보다 마케팅에 주력" 지적 받기도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서울시립교향악단' 사태가 결국 정명훈 예술감독의 업무비 횡령 수사로 비화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두 곳의 시민단체가 정감독이 항공권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등 공금 횡령의 의혹이 있다고 고발, 서울 종로경찰서가 본격 수사에 나섰다.
지난 2005년 서울시향의 예술감독(Music Director)으로 취임한 정명훈씨에 대한 '고액 연봉', '부도덕한 업무 처리'등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11년 말부터 시작됐다.
그러던 중 결국 서울시향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4월 15일로 예정된 LA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의 LA필하모닉 초청 연주회를 급히 취소하면서 서울시향 사태가 미국 음악계로 까지 전해지게 된 것.
보도에 의하면 정명훈씨는 서울시향의 예산을 관리하는 서울시로 부터 연간 20억원이 넘는 봉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 제기의 핵심은 '연봉 이외에도 지휘료, 항공료, 렌터카비, 대외 섭외비, 국내활동 판공비 등이 포함된 엄청난 특권적 대우는 서울시향의 규모와 활동에 비견해 볼 때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명훈씨 측근은 세계적 명성의 지휘자로 이 정도 연봉 수준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비호한다.
이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 교향악단 중에도 200만 달러 연봉 지휘자는 있다. 하지만 그 수는 3명 정도. 시카고 심포니의 리카르도 무티,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마이클 틸슨 토마스가 200만 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연봉을 받고 있으며 내셔널 심포니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195만 달러를 받는다.
대부분 뮤직디렉터들이 큰 수입을 얻고는 있으나 이에는 한참 못 미친다.
오케스트라 비즈니스 전문업체 '어댑티스트레이션'(Adaptistration) 통계에 의하면 현재 미국 오케스트라의 뮤직디렉터 평균 연봉은 51만8000 달러. 이를 감안하면 서울시 시민단체들이 정명훈씨 연봉을 문제 삼을 만도 하다.
과연 오케스트라의 뮤직디렉터(Music Director)란 어떠한 자리인가? 이처럼 엄청난 연봉을 받는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관현악단 이외에도 뮤직 디렉터가 활동하는 곳은 많다. 영화 제작사나 TV 라디오 방송에서 음악 담당자도 뮤직디렉터로 부르고 대학의 음악과 대표도 뮤직디렉터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뮤직 디렉터는 음악만 담당하는 직책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오케스트라에서는 상임지휘자를 뮤직디렉터로 부른다. 연주회를 주도, 지휘를 하는 역할 뿐 아니라 레코딩 작업을 관장하며 오케스트라 단원을 관리하고 이들의 음악적 기량을 향상시켜 궁극적으로는 오케스트라를 빛내야 할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퍼블릭 페이스'(Public Face)로 부른다. 한국식 속된 표현을 쓰자면 '얼굴 마담'이다. 게다가 실권까지 쥐고 있어 오케스트라 멤버들을 채용하고 해고하는 일 등 전반적 인력 관리를 총괄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뮤직디렉터의 역량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흥망성쇠가 달려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수적 도시 보스턴에서 창단된 보스턴 심포니가 전세계 10위권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초기 헝가리 출신의 거장 아르투르 니키쉬의 뛰어난 통찰력 덕이다. 그는 단원들에게 진보적 의식을 끊임없이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흥 공업도시 시카고 시 정부의 후원을 받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아가던 시카고 심포니가 갑자기 추락한 것은 2대 상임지휘자였던 프레데릭 스톡이 세상을 떠나면서. 프레데릭 스톡이 37년간을 재임하며 미국 최고의 관현악단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카고 심포니는 1942년 그의 사망과 함께 음악성이 침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오랜 고통을 딛고 시카고 심포니가 제 2의 부흥을 맛보게 된 것은 프리츠 라이너가 취임하면서다. 이후 시카고 심포니는 정상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현재 뮤직디렉터(리카르도 무티)에게 가장 높은 연봉을 주는 미국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군림하고 있다.
훌륭한 지휘자를 거물급 장인을 의미하는 '마에스트로'(Maestro)로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엄청난 능력 때문이다. 영어로 치자면 'Master'의 뜻이다.
스타탄생의 시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뮤직디렉터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이들의 수입도 늘어났다. 유명 지휘자의 경우 보통 뮤직디렉터 직위를 2~3개 갖고 있으며 객원지휘 소득도 만만치 않다. 정상급 지휘자 경우 한번 지휘에 4~5만 달러 정도 받는다. 2003년 뉴욕필의 로린 마젤이 서울시향을 한차례 지휘하고 10만 달러를 받아 뉴스가 되기도 했다.
권리 만큼 책임도 크다. 단원의 음악적 기량을 최대한 끌어올려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드높여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오케스트라 멤버는 80~100여명 정도. 기량이 뛰어난 멤버를 확보하고 충분한 대우를 해주려면 엄청난 운영비가 필요하다. 이런 필요에 의해 최근에서 대다수 오케스트라가 뮤직디렉터에게 기금 모금의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거장 신화'라는 저서에서 클래시컬 뮤직계도 상업주의에 휘둘려 21세기에는 뮤직디렉터의 역할이 음악보다 마케팅에 치우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이나 기자
여성에겐 아직도 '좁은 문'
지휘세계에도 여성에게는 여전히 높은 유리벽이 존재한다. 현재 세계 오케스트라에서 뮤직디렉터로 활동하는 여성은 손꼽을 정도. 미국의 20대 오케스트라 중 여성 상임 지휘자는 볼티모어 심포니 마린 알솝 뿐이다.
국제 무대에서는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단의 뮤직디렉터 시몬 영(Simone Young)이 알려져 있다.
1956년 뉴욕에서 태어나 줄리아드대학와 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마린 알솝은 볼티모어 심포니의 12대 뮤직디렉터로 취임한 후 뛰어난 실력과 지도력으로 2020-2021년 시즌까지 계약이 연장된 상태다.
최근에는 사회적 인식이 좋아지며 지휘에 도전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LA 필도 최근 리투아니아계 여성 부지휘자(Mirga Grazinyte-Tyla)를 영입한 바 있다. 한인으로는 첼리스트 장한나가 지휘자로 데뷔했으며 보스턴 심포니에서 부지휘자를 지낸 성시연씨가 현재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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