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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 찬·반 세력 격전장 된 가주

주 상원 보건위 '면제권 박탈 법안' 통과로 촉발
반대측 온·오프라인서 잇딴 격렬 시위

미시시피·W.버지니아만 의무화
가주서 통과되면 타주도 큰 영향
개인·종교적 신념이 우선
"백신에 자폐증 유발 물질있는데
제약회사·정부가 의도적인 은폐"
공공의 안전 더 중요하다
"무접종 증가…일부 학교 75%까지
최근에 백일해·홍역 창궐한 원인"


지난 8일 가주 상원 보건위원회가 가주내 모든 어린이들의 백신접종을 의무화한 SB277 법안을 6-2로 통과시키면서 백신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법안의 핵심은 개인적·종교적 신념에 의한 백신접종 면제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1976년부터 인정한 면제권을 박탈하려 하자 아이들에게 백신을 맞게 할 수 없다는 측과 공중보건에 개인적·종교적 신념을 개입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SB277이 보건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가주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백신 반대운동에 대한 반격이다. 4월 현재 전국적으로 개인적 신념에 의한 백신접종 면제(Personal Belief Exemption·이하 PBE)를 허용한 주는 가주를 포함해 20곳, 종교적 신념에 따른 백신접종 면제 허용주는 48곳에 이른다. 접종을 의무화한 주는 미시시피와 웨스트 버지니아 두 곳 뿐이다.

가주의 결정에 따라 전국적 분위기는 반전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과 오리건 주의 비슷한 법안이 좌절된 것과 맞물려 가주가 백신접종 면제냐 의무화냐, 두 세력의 접전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SB277는 상정과 함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반대 단체들은 온라인 사이트 www.sb277.org를 열고 조직적인 저지에 나섰고 미네소타 주의 반대운동 단체인 '건강의 선택(Health Choice)'은 유아가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TV에 내보냈다.

표결 당일 법안 반대자 수백 명은 의사당으로 몰려들어 시위를 벌였고 일부는 청문회에서 법안 지지자들을 저주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겠다고 협박했다.

하루 전인 7일에는 새크라멘토에서 백신 반대 다큐멘터리 '트레이스 어마운츠(Trace Amounts)' 시사회도 열렸다.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아들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이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백신을 접종시키는 것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10일에는 법안을 공동발의한 리처드 판(민주·새크라멘토) 의원에 대한 신변보호 강화 조치가 내려졌다. 인터넷에는 판 의원을 아돌프 히틀러에 빗댄 이미지가 유포되고 있던 터였다.

캐롤 류 가주상원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로버트 옥스 대변인을 통해 SB277 관련 전화가 이민과 존엄사, 경찰 총격 등 올해의 그 어떤 이슈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옥스 대변인은 "언론보도 첫 날부터 지금까지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백신접종 반대자들은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믿는다. 발단은 199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의 논문이다. 그는 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고 주장해 10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의학계는 웨이크필드가 연구 결과를 조작했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는 2008년 의사 면허가 박탈됐다.

미국에선 백신의 부패를 막는 보존제로 사용되는 티메로살(Thimerosal)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불신이 확산됐다. 티메로살에 들어있는 수은이 뇌에 쌓이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주장에 대해 1999년 미국소아과학회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판 의원은 "이제 백신에 티메로살을 사용하지 않지만 자폐증은 증가하고 있다"며 "자폐증의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백신이 원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여전히 백신에 들어있는 알루미늄이나 젤리틴 등의 첨가물을 의심하고 있다. 또 백신이 자폐증을 포함한 발육과정에서 발생하는 질병과 연계성이 있다고 본다.

강경한 반대자들은 의사들이 속으론 백신이 위험하다고 믿으면서도 접종을 계속한다거나 의사와 제약회사들이 이익 감소를 우려해 예방접종의 위험성을 은폐하려 한다고 믿는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하는데 정부가 이 비밀을 덮으려고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주 보건국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가주내 킨더가튼 입학자의 약 10%가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않았다. 이들 중 다수는 앞으로 접종을 하겠다는 조건부 입학생이다. 가주 전체에서 PBE 비율은 2.5%에 그치지만 사립학교의 PBE 비율은 공립의 2배가 넘는 5.3%로 추산된다. 2000년만 해도 0.77%에 불과했던 킨더가튼 입학생의 PBE 비율은 2013년에 3.15%로 4배 이상 뛰었다.

학교별 차이도 커서 테미큘라에 있는 리버 스프링스 차터스쿨의 PBE 비율은 약 25%나 된다. PBE 비율이 75%에 이르는 사립학교도 있다.

가주 의회가 백신접종 의무화에 나선 것은 2013년 백일해(Whooping Cough)와 2014년 홍역 발생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홍역은 디즈니랜드에서 발생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보건당국을 긴장시켰다. 의학계는 사라진 전염병이 다시 나타나자 집단면역(Herd Immunity)이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고 의회는 의무화 법안을 들고 나왔다.

집단면역은 특정 집단의 예방접종이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 전염의 연쇄고리가 끊겨 집단 전체가 특정 질병에 대해 안전해 진다는 개념이다. 홍역의 집단면역에 필요한 백신 접종률을 92~94%다.

2008년 홍역 발병 0건, 백일해 감염 49건이던 미국은 2013년 들어 홍역 감염 276건 이상, 백일해 감염 2만2616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보건 당국은 현 추세라면 2000년 기준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선언한 홍역 발병이 지난해 644건을 기록했고 올해는 이를 초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래프 참조> 가주에서는 총 11개 카운티에서 홍역 감염자가 발생했는데 오렌지 카운티가 34명으로 가장 많고 LA 카운티 26명, 샌디에이고 카운티 13명, 벤추라 카운티 9명이었다. <지도 참조>

한편에서는 면제권을 법적으로 박탈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극렬한 백신 반대자들을 자극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백신접종 입증보다 쉬운 면제 절차를 개선하고 전문가들의 상담을 늘리는 것이 불필요한 충돌과 갈등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접종 면제 전 전문가 상담은 PBE 비율을 상당한 폭으로 줄이고 있다. 이 방법만으로도 집단면역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가주 카이로프랙틱협회의 브라이언 스텐즐러 회장은 법안에 반대하면서도 반대운동에 대한 제어가 불가능한 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건 어미곰과 같은 면이 있다. 누군가 아기곰에 접근하면 어미곰은 무엇이든 한다."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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