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목사 납치는 국가주도의 테러
"3억 3000만 달러 북한이 배상하라"
미 연방법원, 유족 승소 판결
코드네임 ‘이선희’로 불리는 북한여성 공작원은 김동식 목사(당시 53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도움이 필요한 탈북자들이 있다”고 이유를 둘러댔다.
미국 영주권자인 김 목사는 1995년부터 중국에 선교사역을 하면서 탈북자들의 도피를 도와줬다. 북한의 제거 대상자였다.
김 목사 주변에서 10개월 동안 기회를 노리던 이선희는 ‘탈북자’라는 단어만으로도 김 목사를 꾀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저녁 식사 자리는 납치를 위한 무대였다. 이선희와 다른 북한공작원들은 약속 장소에 나온 김 목사를 때려 택시에 태운 뒤 그 길로 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납치했다.
김 목사는 납치 당시 대장암 수술을 받고 인공항문을 달고 있던 중환자였다. 이후 김 목사의 소식은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어렵게 북한 장벽을 넘은 소식으로는 김 목사는 고문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다 이듬해 정치범수용소에서 사망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지난 13일 워싱턴 DC의 연방지법 법정.
판결문이 낭독됐다. “김 목사 납치 사건은 국가주도의 테러(state-sponsored terrorism)다. 북한은 김 목사의 아들 김 한씨와 동생 김용석씨에게 총 3억3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
피고인 북한의 대리자가 없는 결석재판이고, 승소했지만 배상금을 받아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판결은 상징적이다. 사법부가 김 목사의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위로이자 테러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날 판결은 지난 2009년 4월8일 한씨와 용석씨 등 김 목사의 가족이 북한을 상대로 연방지법에 소장을 접수한 지 꼭 6년 만에 나왔다. 소송 대리자는 이스라엘 인권단체 ‘슈랏 하딘’이다.
원칙적으로 해외 국가기관은 외국주권면책특권법(Foreign Sovereign Immunities ActㆍFSIA)에 따라 면책특권을 지닌다. 그러나 테러를 목적으로 한 행위에 대한 예외 조항이 김 목사 가족의 소송 근거다.
1심 법원은 북한이 김 목사를 납치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면서 2년 전 기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북한이 정치사상범들을 납치ㆍ고문ㆍ살해해온 것은 사실이고, 그런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극한 상황에서 주지하는 바 김 목사의 납치와 사망 책임은 북한에 있다”며 1심을 뒤집었다.
김 목사 가족의 변호인들은 승소 판결에 대해 “북한 뿐만 아니라 납치 살해 등 테러행위를 일삼는 정부를 상대로 피해자 가족들이 소송할 수 있는 길을 넓혔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연방법원은 1968년 1월 북한에 나포된 미해군 푸에블로호의 선원과 선장 가족들이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지난 2008년 총 6500만 달러의 손배금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김 목사 가족들과 변호인들은 법원 판결에 따라 북한으로부터 배상금을 추징하기 위해 미국과 해외의 북한 소유 금융계좌,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압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김 목사가 납치된지 5년만인 지난 2005년 2월에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일리노이주 출신 상하원 20여명이 김 목사 송환을 촉구하는 서한을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를 통해 북한에 보내기도 했다.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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