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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Story] 서울 시향 LA 공연 취소…'요코 체스키나' 같은 후원자를 기대하며

뉴욕 필하모닉은 2015년 첫 번째 정기연주회를 1월 10일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칼 닐센의 '클라리넷 협주곡',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등으로 막을 올렸다. 그리고 1월 17일에는 베르디의 '레퀴엠'이 연주되었다. 이렇게 1주일 만에 부랴부랴 중량감 있는 곡으로 두번째 무대를 마련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베르디의 '레퀴엠' 연주회는 원래 뉴욕 필하모닉의 열렬한 후원자로 음악감독 앨런 길버트가 추진하는 각종 음악활동에 도움을 주어 온 이탈리아 국적의 일본계 나가에 요코 체스키나(Nagae Yoko Ceschina)의 후원으로 준비되었던 무대다. 그러나 그가 1월 10일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추모의 의미로 공연이 앞당겨졌던 것 같다.

나가에 요코 체스키나는 일본 큐슈 태생으로 도쿄 교향악단의 하프 주자를 거쳐 이탈리아에 유학, 그곳에서 대부호인 렌초 체스키나와 결혼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막대한 유산을 문화예술에 기부해 세계 음악계의 대표적 후원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동안 나가에 요코가 도움을 준 음악가는 20년간 시카고 교향악단과 런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지낸 고 게오르그 솔티(Sir Georg Solti)를 비롯해 오늘날 가장 개성적 지휘자로 인기 절정에 있는 발레리 게르기에프(Valery Gergiev),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주빈 메타(Zubin Metha), 밀라노 '스칼라'의 음악감독을 지낸 명지휘자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 등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리고 한인에게 잊을 수 없는 것은 2008년 2월, 당시 예술감독이었던 로린 마젤(Lorin Maazel)이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했던 그 역사적인 '평양 콘서트' 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요코 체스키나였다는 사실이다.

때는 바야흐로 우여곡절을 거듭하면서 끈질기게 계속되어 온 6자 회담의 희망적 단서가 보이기 시작하고 북미간 화해무드가 조심스럽게 전해지고 있을 시기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 당시의 북한 독재자 김정일을 'Evil'이라고 부르고 북한은 미국을 제국주의 침략자, 군사폭력배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뉴욕 필이 평양에 갔으니 전 세계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가족이 여럿 북한에 살고 있는 처지여서 나에게는 해빙의 숨소리 같은 연주회였다. 이제 본인에게 들을 수 있는 길은 없겠으나 당시 요코 체스키나가 무슨 생각으로 그 엄청난 사업을 추진하였는지 궁금할 뿐이다.

한 음악잡지에서 요코 체스키나의 얘기를 읽었을 때, 우연히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미국 순회공연이 재정문제로 중지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는 무엇보다 30여년 전에 만났을 때, 서로 브람스를 좋아한다고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워한 정명훈, 바로 그 브람스를 프로그램 정면에 내세우고 온다던 정명훈을 먼 발치에서나마 볼 수 없게 된 것이 무척 서운하였다. 이제 경제대국 서열에 섰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이다. 이럴 때 선뜻 도움의 손을 뻗치는 요코 체스키나 같은 후원자가 나타날 수도 있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위진록
<방송인·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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