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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택견 소녀·29세 경찰 지망생 썰매 타고 평창 갈래요

선수층 얇은 봅슬레이·스켈레톤
일반인도 대표 선발전 참여 가능해
야구.보디빌딩 선수 등 16명 도전

상비군 선발 기쁨 맛 본 택견 소녀
몸무게 100㎏ 넘어야 한다는 말에
"무슨 수 쓰더라도 체중 늘릴게요"


해발 700m, 평창의 봄바람은 차가웠다. 그래도 국가대표를 꿈꾸는 도전자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이들이 도전한 건 썰매 종목인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3년 뒤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질주하는 꿈을 꾸며 이들은 썰매에 몸을 실었다.

지난달 28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타트 훈련장에는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국내 저변이 취약한 썰매 종목은 정식 경기장이 없어 2010년 건립된 평창 스타트 훈련장에서 스타트 기록만으로 국가대표를 뽑고 있다. 국내 등록 선수 135명에 불과한 한국 썰매는 저변 확대를 위해 전문 선수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국가대표 선발전 문호를 개방한다. 이를 위해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와 선수가 지도하는 강습회가 매년 1~2회 열린다. 올해 선발전에 참가한 50명 중에는 경기용 썰매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왕 초보자' 16명도 있었다. 이들은 국가대표 출신 16명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했다.

원윤종(30·경기도연맹)은 지난달 독일 빈터베르크에서 열린 2015 봅슬레이 세계선수권 2인승에서 한국 썰매 역대 최고 성적인 5위에 올랐다. 썰매 입문 5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또다른 국가대표 윤성빈(21·한국체대)은 2012년 썰매에 입문한 뒤 3년여 만에 스켈레톤 세계 정상급 선수로 떠올랐다. 둘 다 엘리트 체육 경력자가 아닌 일반인으로 도전해 단숨에 세계 톱10에 들 정도로 눈부시게 기량이 성장했다. 이들을 앞세워 한국 썰매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봅슬레이 2인승과 남자 스켈레톤 등에서 사상 첫 금메달까지 노리고 있다.

이용 봅슬레이대표팀 감독은 "제2의 윤성빈을 꿈꾸는 초보자들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올해도 독특한 이력을 가진 도전자들이 적지 않았다. 여자 봅슬레이 부문에 출전한 중학생 박소진(15·둔촌중3) 양은 택견 선수 출신이다. 박 양은 TV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접한 봅슬레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는 "나라를 대표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남들이 안 하는 분야에 도전해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력사항에 '경찰특공대 체력시험 만점자'라고 적은 박상록(29) 씨는 30대를 앞두고 썰매 국가대표 도전에 나섰다. 박 씨는 "윤성빈 선수를 보면서 일반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면서 "이번에 떨어지더라도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야구·씨름·태권도·육상·보디빌딩 선수 출신도 선발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경기용 썰매를 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지에서 기본 자세를 익혀도 실제 스타트 레인에 서면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경사 20도의 내리막이 시작되는 15m 지점까지 무게 중심을 낮춘 뒤 썰매를 끄는 속도, 시점과 발 구르기 자세 등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몇몇 도전자들은 겁을 먹고 천천히 썰매를 밀기도 했다. 레인에서 넘어지는 선수도 있었다. 이진희 스켈레톤 대표팀 코치는 "초보자니까 잘 못 타는 건 당연하다"며 도전자들을 격려했다.

찬바람 속에서도 처음 썰매를 탄 선수들의 얼굴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박소진 양은 "처음엔 힘들었는데 하면 할수록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선발전 재수생으로 참가한 대학생 이현수(19) 씨는 다른 경쟁자의 스타트 자세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주기도 했다.

올해 선발전에는 국가대표 13명(봅슬레이 9명·스켈레톤 4명)과 상비군 8명(봅슬레이·스켈레톤 각 4명)이 새로 선발됐다. 두 차례씩 레이스를 치러 가장 빠른 기록 순으로 국가대표를 가렸다. 기록을 재는 60m 스타트 라인에서 5초 안팎의 짧은 순간에 0.001초 차로 승패가 갈렸다. 국가대표 원윤종은 "처음 썰매를 탔던 때가 생각난다. 그땐 모든 게 생소했다. 매번 선발전을 할 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택견소녀' 박양과 대표선발전에 두번째로 도전했던 이씨는 이날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혔다. 몸무게 68㎏의 이씨는 "국가대표로 뛰려면 몸무게가 100㎏이 넘어야 한다"는 코칭스태프의 말을 듣고는 "태극마크를 달 수만 있다면 무슨 수로든 살을 찌우겠다"고 말했다.

평창=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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