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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Story] '그림을 듣는다'…추상미술 감상 방법

추상미술은 골치 아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상미술 앞에 서면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 한다. 아무리 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나름대로 해석을 했는데, 그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점잖은 체면에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그렇고, 용기를 내서 작가에게 물어봐도 보이는 대로 느끼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오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추상미술 앞에서 당황스러워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감각구조가 그렇게 생겨있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눈에는 꺼풀이 있는데, 귀나 코에는 꺼풀이 없다. 눈꺼풀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거부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 판단 기능은 머리와 연결되어 있다. 귀로 듣는 음악은 바로 가슴으로 이어지고, 코로 맡는 냄새는 본능과 연결된다. 이에 비해 눈으로 파악하는 것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고, 구체적인 정보다. 인간은 정보의 80%를 눈을 통해 얻는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그림을 보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가슴으로 바로 스며드는 음악을 빼고는, 거의 모든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머리로 해석하려 한다. 그런데 추상미술에는 아무리 봐도 이해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거나, 있어도 매우 애매모호하다. 그러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전을 보면, 추상미술을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순수 형식 요소나 주관적 감정을 표현하는 미술"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바로 이 '주관적 감정 표현'이라는 것이 범인인 셈이다. 그건 해석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흔히 추상 미술을 '모더니즘 시대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술사에서는 추상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작가는 칸딘스키이고, 그 시기는 1910-1925년으로 본다. 기나 긴 인류미술의 역사로 보면 이제 막 태어난 미술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퍼져나가 영토를 넓혔다. 예술의 역사에서 이런 예는 달리 없다. 아마도 현재 미술계에 존재하는 작품 중 절반 이상이 추상미술일 것이다.

이처럼 막강한 존재인 추상미술을 제대로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처럼 급속도로 빠르게 퍼져나간 데는 그만한 필연성이 있을 것이고, 오늘날 많은 화가들이 추상미술을 하는 데도 그만한 까닭이 있을 테니 말이다.

추상미술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될 것 같다. 따지지 말고, 느끼는 것이다. 또는 '그림을 듣는다'라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름다운 꽃을 보고 감탄하거나,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출렁이는 것은 따지거나 해석을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다. 그림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을까?

장소현
<미술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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