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열며] 유관순을 열사를 기리며
홍 효 진 / 자유기고가·뉴욕
3.1운동은 한용운 스님 등 민족을 대표한 33인의 기미독립선언서 낭독으로 시작되었지만 실질적인 만세운동은 20세 전후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운동이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우리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엄청난 사건 한복판에는 청춘이라 불리는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소위 후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군사 통치나 독재 정치에 저항하는 운동인 아랍의 봄이나 오렌지 혁명 등 사회운동 중심에는 학생들이 있음을 보면 젊음이야말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이 틀림없다.
그런데 3.1운동 당시 유관순(1902. 12. 16~1920. 9. 28) 열사가 세상을 떠난 나이는 꽃띠 청춘이었다. 그 나이의 처녀는 뒹구는 낙옆만 보아도 까르르 숨이 넘어가도록 웃는다는 감수성이 예민한 때인데 유관순도 입을 활짝 벌리고 커다랗게 웃은 적이 있었을까. 유관순 하면 식민지가 된 나라의 설움에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비장함으로 무장한 잔다르크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온 국민을 울린 "아버지예 이만하믄 잘 살은 거지예" 하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힘들게 사는 속에서도 간간히 웃던데 유관순도 때로는 배꼽을 잡고 웃어 본 적이 있었을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우리 교육은 개인의 능력을 개발해 주는 창조적인 교육이 아닌 이미 주어진 것을 외우는 식의 주입식 교육이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 마이크를 주거나 사람 앞에 서면 떨거나 긴장에 온몸이 얼어 버린다. 자기가 보고 느낀대로 말을 하는 게 아닌 외우고 있는 정답을 잘 기억해 말하려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유관순 열사가 지금 한국을 본다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서울은 물론 전국이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한 빌딩 숲과 뻥 뚫린 거리 K-POP이란 생기발랄한 청춘들의 모습을 보면 분명 숨넘어갈 듯 즐거워 할 것 같다. 자기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다며.
그러다 소위 일류대 들어가야만 한다며 밤낮없이 책과 씨름하며 친구란 내가 밟고 지나가야만 할 웬수로 여기는 젊은이들이나 프로페셜한 돈벌이 선수가 되려 전력질주하는 잔혹한 젊은이들의 모습에는 "저런 식으로 청춘을 보내라고 내가 목이 터지도록 서울과 천안에서 독립을 감옥에서도 기 죽지 않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단 말인가" 하며 긴 한숨 내쉬며 억울해 하지 않을까.
맨해튼이 아닌 플러싱만 나가도 한인의 맨파워가 초라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한인은 인구가 적으니 양질로 자라야 한다.그런데 교실과 학원 사이를 오가며 오직 입시 책만 들여다 보며 자랐다면 그런 자들이 과연 세계 속에서 몇이나 빛을 낼 수 있을까. 교실만이 아닌 교실 밖에서 자연을 숨쉬고 사람 관계를 익히는 생기 있는 교육이 될 때 창조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양질의 동량들이 되지 않겠는가.
3.1절 기념 행사를 꾸준히 하는 의미는 일제 강압 통치라는 상황에서 일으킨 자주독립운동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갑질이라는 강제에 맞선 우리 선배의 기개를 기억하고 불의(不義) 강제가 있을 때에는 우리도 굴하지 않고 대항하는 후손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리는 게 아니냐 말이다.
3.1절 행사는 꾸준히 하면서 일제 시대를 찬양하거나 미국.중국에 대한 시대주의를 긍정하는 듯한 양면적인 세력이 있다면 유관순이란 이름으로 철퇴를 내려야 하지 않을까.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