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미국도 아닌 필리핀으로 이민을 간다는데
김령의 퓨전에세이 551
하긴 그렇다. 광속 같은 이 시대에 가족은 핵처럼 분리되고, 모두 살기 바쁘고, 조금만 방심하면 낙오되는 세상이다. 가족과 친구, 고향도 모르는 사이 멀어져가는 이 시대, 누가 그 물결 막을 수 있으랴.
며칠 전 서울 사는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렇게 속상해 하는 친구의 편지는 처음이다. 남편이 일찍 실직을 했을 때, 아이들이 상위권 대학에 가지 못했을 때, 쌍둥이 딸들이 둘 다 이혼을 했을 때에도 이렇게 마음 아파하는 편지를 쓴 적이 없었다. 이혼하고 혼자되어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쌍둥이 중 하나가 필리핀으로 이민을 결행, 수속을 다 끝내고 떠날 날을 받아 두었다며 애통해 하는 편지였다.
딸 아이 하나 데리고 가진 돈 다 털어 미국도 아닌 필리핀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간다는 게 심히 속상하단다. 말을 꺼내면 의견충돌이 될 것 같아 말도 못하고 있다며 절통해 하고 있었다. 40이 넘은 나이에 노부모를 두고 남편도 없이 떠날 결심을 할 때까지는 그 아이도 보이지 않는 희망에 대해 생각 많이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보통 봉급자로 부부가 자력으로 집을 장만하려면 28년이 걸리고, 독신이 집 장만을 하자면 60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있다. 그것도 한 푼 안 써야 가능하다는 거다. 18세가 된 아이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며 이민대열에 장사진을 이룬다는 얘기를 들은 지도 오래다.
갖고 싶은 국적은 단연 미국으로, 97%가 넘고 그 대상들은 교수나 회계사 자제들이 41%, 상사원 자제들이 40%, 나머지는 모두 공무원의 자제들이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과 인연을 맺을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은 그나마 그 대열에서도 제외되어 제3국으로의 탈출이라도 시도하는 것 같다.
큰 결심을 한 아이에게 용기를 주라고, 안아주고, 등 두드려주고, 손도 잡아주라고, 필리핀에 살다보면 손녀딸이 미국에 와 공부할 기회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위로의 답을 보냈다.
저간 한국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필리핀에서는 한국인들이 범죄의 주대상이라는 것이다. 좀 있어 보여서일까? 관광객이 넘쳐나서일까? 그간 벌써 많은 한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친구를 더 낙담하게 했을 것 같아 민망하기 그지없다.
미래학회는 미구에 국가나 정부가 해체되는 때가 오리라는 예언이다. 이민은 각자의 생존권에 속하므로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개념의 한계를 넘는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구속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변했다. 미증유의 성장통 속에서도 경제와 더불어 민주주의가 가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젊은 사람들은 좀 더 참고 IT산업의 눈부신 발전에 발맞춰 어서 젊은 두뇌들이 나라를 부하게 만들어 ‘이민 가는 나라’가 아니라 ‘이민 오는 나라’로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싶다. 모자람 없는 이 부유한 나라에서 조차도, 나의 이민은 어딘가 쓸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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