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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산책] 한국 개신교가 시작된 해

옥성득 교수 /UCLA 한국기독교학

올해는 첫 개신교 목회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내한 130주년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생일을 언제로 잡을지 의견이 분분하다. 해방 이전에는 1884년 9월 20일 첫 주재 선교사 알렌 의사가 온 날을 기점으로 삼아 1909년에 선교 25주년, 1934년에 희년을 기념했다. 선교사 관점이었다.

1984년 한국 선교 100주년 행사를 할 때, 한국 '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복음을 수용한 한국인의 주체적 역할과 토착 교회 설립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사관이었다. 1880년대 평안도 상인의 자발적 복음 수용과 개화파 정부의 근대 문명 수용 의지가 만나 한국교회가 출발했다는 민족 교회론이었다. 이제 21세기 세계 기독교 시대에는 이 둘을 통합한 사관이 필요하다.

우리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세례와 성찬)가 집행되는 곳에 한국 교회가 있다. 1832년 자카르타에서 중국을 거쳐 온 귀츨라프의 서해안 선교는 한문 소책자에 의존했고 성례도 없었다. 1865-66년 산동에서 온 토마스의 백령도와 평양 선교는 말씀 선포는 있었으나 성례는 없었다. 반면 1876-79년 만주의 고려문과 영구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로스는 한국어/중국어로 말씀을 선포하고 한글 복음서를 번역했다. 1879년 4명의 한국인이 세례를 받고 영구교회 성찬식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곳은 만주였다. 1883-84년 백홍준의 의주 전도처소와 서상륜의 소래 예배처소에는 말씀과 예배는 있었으나 성례가 없었다. 1884년 상해에서 서울로 전임된 알렌, 1885년 미국에서 파송된 언더우드, 스크랜턴, 아펜젤러, 헤론에게는 영어를 쓰는 외국인교회만 있고 우리말 말씀과 한국인 성례가 없어 준비기였다.



마침내 의주와 소래에 있던 한국인들과 미국 선교사들이 서울에서 만나 말씀을 나누고 세례와 성찬을 하며 첫 장로교회(새문안교회)를 조직한 1887년 9월 27일, 첫 감리교회(벧엘교회, 정동제일교회)에서 한국어로 예배하고 세례를 준 1887년 10월 9일, 한국 개신교회가 출발했다.

1832년 첫 선교 시도 후 55년, 중국과 미국 교회의 선교 노력과 한국인의 복음 수용이 만난 결과였다. 교회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oak@humnet.ucl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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