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2015] 영화 밖으로 나온 수퍼맨
이 경 민 / LA 기획특집부 차장
하지만 사실 수퍼히어로 배역은 배우들에게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얼굴을 알리기엔 그만한 역할이 없다. 세계적 스타를 꿈꾸는 할리우드 배우에겐 일생일대의 기회다. 출연료도 엄청나다. 배우 크리스천 베일이 가장 최근에 배트맨 역을 하며 받은 출연료가 6000만 달러 휴 잭맨이 울버린 역을 하며 받은 출연료가 6500만 달러라니 영화 한 편 찍고 평생 놀고먹어도 될 만한 수준이다.
반면 자칫 수퍼히어로 역은 한 배우의 뒤를 평생 따라다니는 족쇄가 될 위험도 있다. 영화가 지닌 파급력이 워낙 크다 보니 나중에 아무리 연기 변신을 해보려 애를 써도 관객들의 뇌리엔 그 옛날 수퍼히어로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수많은 명작들에서 열연을 펼쳤음에도 크리스토퍼 리브하면 자연스럽게 수퍼맨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하면 자동으로 아이언맨을 떠올린다. 배우로서 뭔가 더 진지한 캐릭터를 맡아 깊이 있는 연기를 펼쳐보이고 싶다는 뜻을 품어 봐도 시리즈 계약에 묶여 5~6년의 시간을 쫄쫄이 옷과 원색 망토를 몸에 감은 채 하늘을 날아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틈만 나면 인터뷰를 통해 "이젠 '~맨' 역은 그만하고 싶다"고 털어놓는 배우들의 심정도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러 할리우드 배우들이 자신의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이용해 선행을 베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수퍼히어로 캐릭터가 가진 의미와 영향력이 스크린 밖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줄 수 있는지가 증명되는 듯하다.
지난해 전립선암 말기로 고통받는 환자를 위해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트위터로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 게 좋은 예다.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 호크 아이 역의 제레미 레너 닉 퓨리 요원 역의 새뮤얼 잭슨 등이 여기 동참해 암환자들이 용감히 병마와 싸워 나가길 기원하는 사진을 올려 따스함을 전했다.
얼마 전엔 수퍼보울의 결과를 둘러싸고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와 스타 로드 크리스 프랫이 선행 대결을 펼쳤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팬인 크리스 에반스와 시애틀 시혹스의 팬인 크리스 프랫이 내기를 펼쳐 서로 상대편이 이길 경우 영화 속 수퍼히어로 의상을 그대로 입고 그 지역 아동병원에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캡틴 아메리카의 승리로 끝나 크리스 프랫이 보스턴의 아동병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끝나는 듯했지만 크리스 에반스 또한 '나 역시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시애틀의 아동병원을 방문하겠다'고 SNS를 통해 발표해 모두를 위한 해피엔딩을 선사했다.
수퍼히어로라는 역은 단순히 오락 영화 속 주인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많은 영화팬 특히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입는 수트는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수퍼파워의 상징이며 악당을 물리치는 그들의 활약은 불굴의 용기와 정의의 승리에 대한 은유이자 찬사이기도 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수퍼히어로 배우들의 작지만 뜻깊은 선행은 그래서 더욱 훈훈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가끔은 좀 유치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할지언정 수퍼히어로 캐릭터의 의미와 책임을 아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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