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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다리 없으니 남의 아픔이 더 잘 보였습니다"···우즈베키스탄 홍대욱 선교사

외발, 암투병, 풍토병…"그래도 감사"
투병중인 아내 간호하러 잠시 미국에
"선교지로 아내와 함께 꼭 돌아갔으면"

한쪽 다리 없지만 더 좋은 것 달라 기도
의족 만드는 선교사 된 건 기도 응답
이제는 '예수' 보여줄 수 있는 선교 해야


올해 여든 세 살인 홍대욱 선교사는 왼쪽 다리가 없다. 19살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했으니, 무려 60여 년을 외발로 살아온 셈이다. 그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지역에서 새소망재활재단을 세워 20년째 현지 장애인을 위한 의수족을 만들고 있다. 지금은 잠시 사역의 쉼표를 찍고 LA에 머물고 있다. 아내(홍순하·76)가 유방암과 난소암 판정을 받아서다. 아내를 간호중인 홍 선교사를 만났다. 그 역시 몸이 성치 않다. 풍토병으로 매일 주사를 맞아야만 하는 홍 선교사는 인터뷰 내내 가려운 몸을 계속 긁어야 했다.

다리 절단할 때 찬송가 불러

홍대욱 선교사는 아내를 돌보다 인터뷰를 위해 잠시 짬을 냈다. 병간호중임에도 그의 주름진 얼굴은 계속 미소를 담아냈다. 홍 선교사는 "인생은 많이 살았지만 하나님 이야기 빼곤 별로 말할 게 없는데…"라며 겸연쩍어 했다.



-지금 상황 때문에 솔직히 신이 야속하진 않나.

"아마 사람들이 나보고 미쳤다고 할거다. 그런데 항상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라는 기대가 있다. 사고가 나서 다리를 절단했을 때도 찬송가를 불렀다."

그는 고향(제주도)에서 교회 일로 버스를 타고 시내를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1951년의 일이다.

-세월이 한참 흘렀기에 웃을 수 있는 건가.

"그건 아니다. 오히려 사고 당시 살아남아서 기적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다리 하나가 남았기에 더 감사했다. 그때 기도했다. 비록 한쪽 다리는 없지만, 더 좋은 걸 달라고…그 기도가 지금 '선교'를 통해 응답받고 있지 않나."

-그땐 편견도 심했을 텐데.

"말도 마라. '병신'이란 소리 정말 많이 들었다. 심지어 다리를 절단하고 나니까 얼마후 아버지가 약간의 돈을 손에 쥐여주더니 이젠 '너 살길 네가 살아야 한다'며 집을 나가라 하셨다."

서울역서 구걸할 자리 알아봐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와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홍 선교사는 "그땐 목발을 짚은 채 서울역에 구걸하기 좋은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는데…"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잠시 상념에 잠긴 듯했다.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인생은 원래 순탄치 않은 건가' 싶다.

"나에게 사고는 오히려 남을 돕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내 다리가 없으니 남의 다리 없는 게 보였다. 장애인에게는 내 다리 같이 딱 맞는 의족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내게 그 기쁨은 누군가를 위해 의족을 만들어야겠다는 이유가 됐다. 게다가 한쪽 다리가 없으니 되레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더라."

수십 년간 익힌 기술이 도구로

그는 미국인 선교사가 우연히 전해준 나무 의족을 제공받고 그때부터 장애인 보조기구 제작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세브란스병원(10년)과 성모병원(7년)에서 근무하며 학업(대신신학교 목회학)도 병행했다. 직장 동료였던 아내도 그때 만났다. 17년간 일한 경험은 그가 선교사로 쓰임 받는 바탕이 됐다.

-미국은 어떻게 오게 됐나.

"1969년이다. 디트로이트에 의족 만드는 회사에 취직이 됐다. 사실 꽤 살 만했다. 거기서 20년 정도 일하다 캘리포니아로 왔는데 내 고향이 제주도라 그런지 바닷가에 좋은 집도 하나 샀었다. 지금은 다 팔았다. 우린 은퇴자금까지 선교에 다 써버렸다. (웃음)"

-노후를 즐길 수 있는데 왜 선교사가 됐나.

"난 원래 목사 아닌가. 의족을 만들며 삶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내겐 목회였지만 항상 선교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그때 출석하던 교회에서 어떤 방글라데시 선교사가 간증을 하다가 다리 없는 아이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때 '저거다' 싶었다. 내가 가진 기술을 갖고 도움이 필요한 지역에 직접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난 목사이자 기술자"

홍 선교사는 지난 1994년 가족과 함께 이슬람 지역인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그는 여든이 넘었지만 아직 현역으로 그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슬람권에서 선교는 제약이 많지 않나.

"물론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우즈벡 정부에 솔직히 말했다. 신분은 분명 '목사'지만 난 의족도 만들 수 있는 '기술자'라고…그랬더니 그 솔직함 때문인지 오히려 이제는 우즈벡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다."

-의족 한 개를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나.

"보통 각 사람에게 딱 맞게 제작하려면 1주일은 걸린다. 그래서 오랜 사전 상담이 필요하다. 그건 단순히 의족 제작을 위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상처까지 보듬는 시간이다."

-문득 '상처입은 치유자'란 책 제목이 떠오르는데.

"얼마 전 사고 때문에 다리를 잃은 한 청년에게 의족을 제작해줬는데 그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하더라. 근데 오히려 내가 고마워서 울었다. 난 우리 센터를 찾는 이들에게 '내가 이렇게 다리가 없으니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꼭 감사의 말을 해준다."

아내는 정말 예쁜 사람

잠시 화제를 바꿨다. 투병중인 홍순하 사모의 상태가 궁금했다.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수술 후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

"정말 예쁘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정말 사랑해서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존엄성을 깨우치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엄함을 아는 사람이다. 아내는 보육원에서 장애 아이들을 돌보는데 대소변까지 웃으며 다 치운다. 나는 솔직히 그 일은 잘 못하겠다. (웃음) 근데 아내는 '예수님도 죄인인 우리를 위해 직접 왔는데, 하물며 우리가 그분이 지은 귀한 피조물을 냄새 나고 더럽다고 어떻게 돌보지 않을 수 있느냐'고 늘 말한다."

그들은 '나'아닌 '예수'를 본다

홍 선교사는 "아내가 빨리 나아서 선교지에 꼭 함께 돌아갔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아직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선교 열정은 대화 내내 묻어났다.

-선교는 무엇인가.

"우리는 짓밟혀도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사는 게 선교다. 그건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예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은 '말'이 아니다."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내면이 깨끗해야 한다. 그게 안되면 아무리 좋은 것으로 치장하고 감싸도 중병을 앓는 거다. 우리가 성도란 신분으로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우리를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안의 '예수'를 보는 것 아니겠나."

홍 선교사는 선교지의 상황을 언급하며 "큰 교회들이 '못된 짓'을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일침은 날카로웠다.

-못된 짓이 궁금하다.

"한국교회가 외형만큼 정말 크다고 보나. 돈과 도덕성 타락 때문에 다 무너지고 있다. 선교가 어느새 자랑과 성과로 변질됐다. 선교는 돈이나 전략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성과로 변질됐다는 것은.

"선교지에 오면 선교 보고를 해야 한다며 온통 사진만 찍어간다. 지금은 사역을 어떻게 포장하는가가 중요해졌다. 통탄할 일이다. 이게 무슨 꼴인가. 모두가 통곡해야 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이제는 성도로서 좀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장열 기자

ryan@koreadaily.com

☞새소망재활재단은

홍대욱 선교사 부부를 비롯한 10여 명의 현지인 직원이 함께 사역한다. 지금까지 6000여 명에게 의족을 제공했고 재활훈련을 시켰다. 이 재단은 미국으로부터 결함이 있거나 중고품인 의료보조기구를 받아서 다시 쓸 수 있게 재생한 뒤 장애인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또 의족 외에도 옷, 이불, 신발 등을 지원받아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 직업학교, 보육원 사역도 재단의 주요 사역 중 하나다. 홍 선교사는 "현지에서 함께 동역 할 젊은 선교사들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전했다.

▶도움문의:(949) 533-8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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