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국제시장'은 영화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뉴저지
1950년 크리스마스를 불과 3일 앞둔 12월 22일 한국전에 물자수송을 맡은 7800톤의 메더디스 빅토리아 호의 선장 레나드 라루(Leonard Larue)의 고백이다. 그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이야기는 필자가 2012년 6월 16일자 칼럼에 소개한 바 있다. "배에 실려있는 병기와 차량들을 바다에 던져라 그리고 저 피난민들을 태워라. 태울 수 있는 만큼 많이." 그 한마디에 생사(生死)의 갈림을 체험한 분들의 악착같은 삶의 여정이 영화 '국제시장' 이야기다.
60명 정원에 이미 47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던 화물선 빅토리호. 무려 1만4000명을 죽음 직전에 구한 기적의 배와 보트 피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한국정부는 선장 레나드 마루에게 을지무공훈장을 미의회는 갤런트상을 미교통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구출을 한 배'로 선포하였다.
1950년 12월 눈보라가 매섭게 휘날리던 당시 북한의 최대항구 원산은 이미 중공군의 수중에 들어간 상태였다. 사람 키높이로 쏟아진 폭설가운데 8만여 명의 중공군들이 친 포위망을 뚫고 유령처럼 밀려온 장진호 일대의 미해병 1사단 2만여 명과 북쪽에서 고립되어있던 미 10군단 10만 명의 병력과 장비 수십만의 피난민은 흥남부두를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만들고 남았다.
그 장사진 속에 수많은 덕수와 그 가족의 피말리는 탈출기와 이산의 고통은 분단 한국민이 치른 자유민주주위의 값비싼 댓가였고 피난지 부산에서의 고초는 전쟁세대가 겪어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적 가치나 문화적 갈등 내일을 향한 꿈 등은 극소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정주영이나 앙드레 김 같은 특출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사치일 뿐이다. 가진 것이라곤 젊음과 몸뚱이 하나 뿐인 당신들에게 독일의 탄광이나 월남의 정글정도는 가족이 살기위한 무한 담보(擔保)로 보였을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두고 진영 간에 시비가 요란하다는 보도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뜬금없이 본 적도 없는 영화를 두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부부싸움조차 중단하고 경례' 운운하면서 뭔가 각본있는 보수진영의 노림수로 의심받게 한 빌미를 제공한 면도 있다.
그렇다고 영화 '변호사'를 좌 '국제시장'을 대표적인 '우'로 서로 욕하고 진영 갈등으로 몰고가는 것은 서글프다. 소통과 화합의 작가정신이 훼손되고 오히려 또 하나 갈등의 분화로 사회적 낭비를 초래해 가는 것이 안타깝다.
'국제시장'을 본 소감은 한마디로 우리 이민 세대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눈보라가 휘날리던 흥남부두는 70~80년대 당시 맨몸으로 떠났던 김포공항 상황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덕수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몸을 던졌던 국제시장은 이민세대가 부딪힌 폐허같이 인적 드문 브로드웨이와 플러싱의 상가 옛 모습들과 비교가 된다. 덕수가 독일의 탄광과 월남의 정글을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듯이 그들 또한 브롱스와 할렘을 마다하지 않았다.
영화 '국제시장'은 적어도 3대가 같이 앉아서 눈물 흘리며 볼 수 있는 착한 가족영화다. 부모는 물론 할아버지 세대의 애환을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로 감사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거기에 왜 '좌'가 있고 '우'가 있을까. 영화는 관객의 기호를 충족하고 대중의 공감을 표출해 내면 흥행을 이끌 수 있다. 그래서 '국제시장'은 오늘도 우리 동포들을 하루 수천명씩 극장 앞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덕수에게 비치는 기울어진 세상과 뒤틀린 감정이 보인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과 상실감이 곧잘 분노가 되어 좌충우돌(左衝右突)한다. 혹시 우리 이민세대에게도 이런 타성이 있지 않을까? 뭔가 잡고 있지 않으면 나락으로 밀려 떨어져버릴 것 같은 완고한 좌절감이 우리를 잠 못들게 하지는 않을까? 덕수가 변한 세상을 인정하고 '꽃분이네 가게'를 놓았던 것처럼 우리들도 버릴 때 오는 상쾌한 승리감을 이 영화를 통해서 얻었으면 한다.
그래도 마뜩찮으면 자신의 삶을 향해 스스로 큰 공로상을 드려봄이 어떨까. 열심히 살아서 대견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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