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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국제시장'의 또다른 주인공들

채수호 / 자유기고가·뉴저지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 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천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 영화 국제시장의 마지막 대사다.

1950년 크리스마스 무렵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피난민 대열에 섞여 미군 수송선에 오르다가 여동생과 아버지를 잃고 남은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온 4남매 중 맏아들 덕수의 살아온 이야기를 그린 영화 '국제시장'이 온통 장안의 화제가 되고있다. 아마도 그 시절을 직접 겪은 세대에게는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후의 젊은 세대에게는 아버지 세대가 살아온 모습을 마치 자신들이 경험하듯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덕수를 비롯해서 수많은 또다른 덕수들의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미군 통역을 맡고 있던 현봉학 박사의 애국적인 간청과 이를 받아들여 피난민들의 승선을 허가한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아몬드 소장 그리고 피난민들을 직접 실어 나른 헌신적인 지휘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 덕분에 12월 12일부터 24일까지 모두 9만8000여 명이 193척의 배에 나눠타고 남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첫 장면은 발디딜 틈 없이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피난민들이 미군의 마지막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밧줄사다리를 타고 배에 오르는 모습이다.

이 배의 선장인 36세의 레오나드 라류(Leonard LaRue)는 배에 선적되어 있던 무기와 탄약 차량 등을 모두 내리고 대신 피난민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12월 22일 밤새도록 배에 오른 피난민 수는 무려 14000여 명에 달했다.

59명 정원으로 되어 있는 선실은 물론 5개의 화물칸과 주갑판 위까지 배 안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사람들로 메워졌다. 양식은커녕 마실 물조차 없었다. 몇 개 안되는 화장실은 오물로 넘쳐 곧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메러디스호는 기뢰가 수없이 매설된 해안 항로를 피해 동해 먼바다로 나가 이틀간을 항해한 끝에 부산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피난민들로 포화 상태에 이른 부산항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하루를 더 항해해서 거제도에 도착한다. 배에 타고 있던 14000여 명의 승객들은 기적과 같이 모두 무사했으며 오히려 사흘간의 항해 중 다섯 명의 새 생명이 배 안에서 탄생하였다. 배 안에는 가위도 없었기 때문에 탯줄을 이빨로 끊어야 했다.

레오나드 선장은 후일 회고록에서 '작은 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도 배가 침몰하지 않고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크리스마스 날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분명히 기적이었으며 하느님의 손길이 직접 그 배의 조타륜을 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다.

레오나드 선장의 이야기는 가스실로 보내질 유대인 1200여 명을 구해낸 독일인 사업가 쉰들러의 이야기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구조된 인명의 규모나 당시의 긴박하고 극적인 상황이 '쉰들러의 리스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대한 구조작전이었다.

흥남철수작전이 있은 지 4년 후인 1954년 40세의 레오나드 선장은 바다를 떠나 뉴저지주 뉴튼타운의 성바오로 수도원에 수도사로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2001년 10월 14일 87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조용히 수도생활을 하며 수도원 안의 기념품 가게를 관리하였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감명을 받은 관객들이 영화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당시 미군 통역 현봉학 박사와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아몬드 소장 그리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오나드 선장과 같은 진정한 영웅들의 숭고한 인류애 정신도 함께 기억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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