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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사라진 악기

몇년 전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샌드위치 가게에서 악기를 도난당했다. 도둑맞은 바이올린은 18만 달러(약 18억원)를 호가하는 유명 악기였다. 게다가 바이올린과 함께 보관되어 있던 10만 달러(약 1억원) 상당의 활 두 개까지 함께 잃어버렸으니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만 했다. 그 바이올리니스트가 도난당했던 악기는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바이올린이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400여 대 밖에 남아 있지 않은 혈통있는 명기로 연주 가능한 상태로 보존된 악기는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 보험회사는 도난당한 바이올린을 찾기 위해 약 5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고, 얼마 후 악기를 훔쳐간 3인조 도둑은 런던 경찰에 체포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이올린의 실제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던 좀도둑들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150달러에 팔려고 했다가 덜미를 잡혔다니 말이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Yo-Yo Ma)도 악기를 잃어버릴 뻔한 끔찍한 경험을 겪었다. 1999년 음악회를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이었던 요요마는 카네기홀에서 열렸던 공연을 마친 후, 호텔로 돌아가던 중 타고 왔던 택시 트렁크 안에 본인의 첼로를 둔 채 그냥 내리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당시 그가 사용하던 첼로 역시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당시 가격만 하더라도 300만 달러에 달하는 초고가의 악기였다. 특히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쓸만한(?) 첼로는 현재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대 남아있지 않다. 악기를 차에 두고 내린 것도 큰일이었지만 다음날에도 연주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더 심각했다. 맨해튼을 질주하는 택시를 일일이 검사할 수도 없고, 이보다 훨신 더 위급한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 뉴욕 경찰이 한 사람의 분실물을 찾기 위해 특별한 시간을 내 줄 것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경찰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악기의 행방을 추적했다. 요요마가 택시 요금을 지불할 때 무심코 받아둔 영수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택시 운전사는 자신이 태운 손님이 누구인지도, 트렁크에 실렸던 짐이 300만 달러 짜리 첼로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악기를 찾아 남은 음악회를 무사히(?) 마치긴 했지만 자신의 분신이자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악기를 잊어버리고 택시에 두고 내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얼마 전 뉴욕에서는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맨해튼에 거주하는 한 피아니스트는 출타가 잦아지면서 서블렛 광고를 냈다. 글을 보고 찾아온 입주인에게 자신의 아파트를 내주었고 그는 집을 비우게 되었다. 당시 집 안에는 고가의 그랜드 피아노를 비롯해서 몇 가지 값 나가는 물품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서블렛을 준 입주인이 잠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피아니스트가 뉴욕에 돌아왔을 때 그랜드 피아노를 비롯한 집안 물건들은 입주인과 함께 사라진 뒤였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14만 달러를 호가하는 분실된 피아노가 롱아일랜드의 한 피아노 배송 업체에 보관되어 2만 달러 헐값에 팔려 샌프란시스코로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가족들의 권유로 잠적했던 입주인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피아노는 다시 주인의 품으로 돌아왔다.

한 유명 음악대학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외부 음악회가 있어서 피아노를 운반하는 전문가가 학교를 찾았다. 전문 음악회장에서나 사용되는 그랜드 피아노(concert grand piano)를 운반하기 위해 학교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악기를 옮길 수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학교에는 어떠한 외부 행사 계획도 없었다. 배짱 두둑한 도둑은 행사를 빙자해 악기를 유유히 빼돌리는 간 큰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 음대는 보안 요원에 의해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쉽게 훔쳐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도둑은 이런 황당무계한 사건을 뻔뻔하게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 악기를 분실했던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파다하다. 대학교 동아리 방에 굴러 다니는 고물 통기타를 도둑 맞아도 가슴 아플 터인데, 200만 달러 짜리 명기가 150달러에 어이없이 팔려나간다면 그 악기 주인의 심정은 어떨까? 연주자들에게 악기는 또 다른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크기와 가격에 상관없이 그 존재만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김동민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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