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가 된 상병
슈틸리케 발탁 전까진 사실상 무명
A매치 데뷔골 이어 호주전 결승골
대표팀 새 해결사 탄생 희망 보여
선배들 축구화 물려 신으며 꿈 키워
최용수 이을 '파워 스트라이커' 예고
'군인 스트라이커' 이정협(24.상주 상무)이 축구대표팀의 새 해결사로 떠올랐다.
지난 한달동안 이정협이 만든 '군데렐라(군인+신데렐라)' 스토리는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무명에 가까웠던 그가 아시안컵 대표팀에 깜짝 발탁되더니 지난 4일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 데뷔골을 넣었다.
지난 10일 오만과의 아시안컵 1차전 땐 골키퍼와 1대1로 맞선 찬스에서 자신감 없이 어정쩡한 패스를 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하지만 지난 17일 아시안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선발로 나서 호주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렸다.
이정협은 이근호(30.엘 자이시)의 패스를 몸을 날리면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다. 호주 팬들을 충격에 빠뜨린 그는 상대 응원단 앞에서 현역 군인답게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지난해 1월 '이정기'에서 이정협으로 개명한 그는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 뒤부터 일이 잘 풀렸다. 그러나 이정협의 성공 스토리는 남다른 노력과 눈물의 소산이었다.
이정협의 부산 동래고 시절 감독이었던 박형주(43) 부산 아이파크 유소년 총괄 매니저는 "정협이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특출하진 않았지만 축구를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열정 하나로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박 매니저는 2005년 부산 당감중 2학년이던 이정협을 처음 만났다. 연습경기에서 활발하게 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박 매니저는 "정협이의 키가 당시 1m78㎝이었다. 체격이 좋은 스트라이커였지만 작은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뛰더라. 동래고 선배 최용수(42.1m84㎝) 서울 감독의 뒤를 잇는 대형 스트라이커가 될 거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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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61) 대표팀 감독도 "뛸 때마다 흥미로운 움직임을 보였다"며 이정협을 대표팀에 깜짝 발탁했다. 이정협은 최용수의 대를 이을 '파워 스트라이커'로 분류된다. 테크닉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많이 뛰고, 상대 수비를 힘으로 부수며, 찬스에서 기어코 골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이 '독수리' 최용수의 현역 때 모습과 흡사하다.
현재 이정협의 키는 1m86㎝다. 또래보다 큰 키를 활용하기 위해 그는 어려서부터 독하게 훈련했다. 줄로 매달아 놓은 공에 헤딩을 하는 훈련을 하루 500번씩 했다. 패스 훈련도 미드필더처럼 많이 한다. 공격수이면서도 매끄러운 패스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게 이정협의 장점이다. 박 매니저는 "정협이는 개인훈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몸 관리를 잘해서 큰 부상이 없는 선수"라고 말했다.
동래고 1학년 때부터 이정협은 프로 2군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3학년 때 팀 주장을 맡아 전국대회에서 동래고를 우승으로 이끌고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박 매니저는 "주장이면서도 후배들한테 싫은 소리를 좀처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 성실했기 때문에 정협이를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정협의 축구인생을 지탱한 건 어머니 배필수(57) 씨였다. 화물선을 타는 아버지는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 어머니가 아들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위해 이정협은 한눈 한 번 팔지 않았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항상 씩씩했고, 축구화 등의 물품들은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아 썼다. 박 매니저는 "정협이 어머니의 몸이 좋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정협이가 어머니 뜻을 거역하지 않았다"면서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정협이가 몰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봤다. 그럴 때마다 더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고 말했다.
어렵지만 굳세게 성장한 제자가 아시안컵에서 활약하자 박 매니저는 "정협이가 손흥민(23.레버쿠젠)처럼 욕심을 내기도 하고, 확고한 목표를 가졌으면 좋겠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충분히 더 좋은 활약을 할 수 있다"고 응원했다. 이정협도 고국에서 응원하는 스승과 어머니의 마음을 안다. 그는 "호주전에 첫 선발로 나서 긴장을 많이 했지만 좋은 결과가 나왔다. 자신감을 얻었다. 앞으로 더 많은 골을 넣고 싶다"고 말했다.
브리즈번=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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