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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타면서 가오리라

신생을 돋울 영묘한 빛의 서기가 온 누리를 감싼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 전문)

그리하여 친구여! 아무도 밟지 않은 시간 앞에 우리는 함께 섰다. 그 순백의 지평 위에 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우리는 무한 연속하는 우주적 시간의 균일성에 비추어, 묵은해와 새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그 흐르는 시간에 매듭을 지어 새해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슴 설레게 되는 까닭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 때문일 게다. 그 희망을 위해 다져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으로 새해라 일컫는다.



그것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 터인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서, 도리 없이 내가 변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변하면 눈에 보이는 세상도, 나를 바라보는 세상도 변하게 마련이어서 필경 세상이 은총이 되는 벅찬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변화는 단순히 속된 욕망성취를 위한 모색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지향의 삶을 위한 인격의 변화를 뜻한다. 그 변화의 실천적 격발 인자는 겸손과 배려라는 삶의 기본적 덕목이다.

겸손은 나보다 내가 낮아지고 자신을 남보다 낮아지게 하는 지혜에서 비롯된다. 배려는 자비의 원초적 심정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염려, 헤아림과 보살핌이다. 따라서 겸손과 배려는 가장 세련된 삶의 가치로써 선(善)의 시발이 된다.

불교의 궁극은 지혜와 자비에 의한 인격의 완성이다.

지혜는 나(에고)라는 것이 덧없는 것이기에 불멸의 독립된 실체가 없는 허상임을 인지하여, 모든 존재들이 무관하지 않아 '따로 또 함께'의 관계임을 깨닫는 영적 자각이다. 그러한 자각에 의해, 부질없는 아집과 아애, 아만 등으로 무장된 이기 배타적인 나가 무장해제되고 소멸된다. 그 지혜에서 자연히 발현되는 실천 행이 자비이다. 자비심은 주로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과 연민이며 그를 위한 헌신이다.

결국 지혜의 불로 자신을 태워 소멸시키는 지난하고 고독한 수행을 통해, 견고하게 닫힌 마음이 확연히 열리면서 우주적 '참나'가 드러나게 되어 마침내 인격은 완성되게 된다.

태양은 자신을 끝없이 태우면서 모든 존재에게 다함 없는 생명의 에너지를 시여하는 자비의 화신이다. 그 변화는 내가 재가 되는 거룩한 소멸. 그러므로 가야한다. 태양처럼 태우고 태우면서 그 머나먼 길을, '가야지, 가야지 산 넘고 물을 건너. 꽃이 피면 꽃에서 자고 바람 불면 바람에 자'면서, 그래 '타면서 가오리라' 나 없는 그곳으로,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계로.

박재욱(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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