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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집도 '글쎄' … 왜 돼지등뼈탕 이름이 감자탕일까

56년 전 서울 돈암동은 동대문과 청계천으로 일하러 다니는 ‘공순이’ ‘공돌이’들이 주로 사는 달동네였다. 이들의 주린 배를 달래주던 돈암동 시장에는 돼지고기의 살코기만 수출하고 남은 다리, 내장, 뼈 등의 식재료들이 넘쳐났다. 기름진 살코기는 아니지만 고기 향이라도 맡을 수 있는 저렴한 부속 재료에 서민들은 열광했다.

 이런 돈암동에서 돼지 등뼈에 구황작물인 감자를 끓여낸 감잣국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잣국은 충북 진천에서 상경해 풀빵 장사를 하던 이두환씨가 1958년 1월 24일 감잣국과 콩비지를 주로 하는 ‘부암집’이란 식당을 차리면서 시장에 등장했다. 부암집은 2대가 물려받으며 감잣국 전문식당인 ‘태조감자국’이 됐다. 태조감자국 3대 사장 이호광(41)씨는 “응암동의 유명 감자탕집 중 한 곳도 우리 집에서 음식을 배워갔다고 들었다”며 “우리 감잣국이 오늘날 감자탕들의 어머니인 셈”이라고 말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동화작가 마해송 선생은 태조감자국이 창업한 그해 감자탕을 묘사한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돼지뼈다귀 살점 다 긁어버린 뼈다귀만 여름이면 감자하고 삶는다기보다 곤 국물 한 뚝배기에 오십 환 약주가 장안 제일일 게다.”(동아일보 58년 6월 29일자) 서민 음식이었던 감자탕의 자리를 알 수 있다.

할아버지 식당 ‘부암집’ 앞의 어린 시절 이호광씨(왼쪽). 그는 지금 태조감자국의 3대 사장이 됐다 .
 감잣국이 서민음식으로 인기를 끌면서 돈암동 인근에도 감잣국·감자탕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다들 서로가 ‘원조’라고 간판을 내걸었다. 진짜 원조 입장에선 애가 탈 노릇이었다. ‘태조’라는 현재의 상호도 ‘수많은 원조’에 대한 반발로 나왔다. 이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희가 원조면 우리는 태조’라는 의미로 상호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태조감자국의 감잣국 크기는 ‘소, 중, 대, 특대’ 대신 ‘좋타(1만1000원), 최고다(1만4000원), 무진장(1만9000원), 혹시나(2만4000원)’의 네 가지가 있다. 메뉴 외에도 ‘태조감자국 주제가’나 ‘술·안주 관련 명언’ 등 벽에 손글씨가 빽빽하다. 생각나는 건 뭐든지 쓰기 좋아했던 이씨의 아버지 이규회(2002년 작고)씨가 틈틈이 써둔 것을 가게를 옮겨오며 형이 일일이 베껴 적었다. “아버지가 손님이 주문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메뉴 이름을 정하려고 애를 썼어요. 손님들은 주문할 때 큰 목소리로 ‘최고다!’라고 외치는 걸 좋아하시죠”. 벽의 메모들은 ‘즐겁게 장사하자’는 아버지 이씨 장사철학의 일환이었다. “아버지는 ‘장사를 예술’이라고 강조하셨던 분이었어요. 메뉴 작명과 벽에 쓴 명언들도 아버지의 ‘장사 예술’ 중 하나였죠. 기분이 좋으신 날은 처녀뱃사공의 음에 맞춰 본인이 작사한 태조감자국 노래를 직접 부르곤 하셨어요.”

태조감자국의 메뉴 중 셋째로 큰 ‘무진장’(1만9000원)으로 성인 3~4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강정현 기자]
 ‘감자탕’ 이름의 유래는 ‘설렁탕’ ‘빈대떡’의 유래와 더불어 한식 이름 3대 미스터리다. 감자탕이라는 이름에서 음식이 즉각 유추되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 등뼈를 ‘감자뼈’라고 불렀다는 설부터 돼지 등뼈가 선호되지 않는 재료라 부재료인 ‘감자’로 대신 불렀다는 설까지 다양하다. 원조집에 어떤 설이 설득력 있는지 물었다. “등뼈는 감자탕집에만 납품하다 보니 ‘감자뼈’라는 이름이 붙은 것뿐이라고 들었어요. 당시 싸고 흔했던 감자를 많이 넣어 감잣국이 된 것 같아요. 국물을 짜게 졸이면서 감자탕이, 뼈를 많이 넣으면서 뼈해장국으로 진화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태조감자국의 감잣국은 감자탕에 비해 감자를 많이 넣는다. 덜 익지도 으깨지지도 않는 포슬포슬함을 유지해 다른 감자탕집의 구색 맞추기용 감자와는 차이가 있다. 볶음밥을 시켜도 감자를 일일이 으깨줘 감자의 맛을 살린다. ‘국’과 ‘탕’의 의미 차이처럼 국물도 더 맑고 담백한 편이다. 시래기가 아닌 유채나물과 깻잎을 넣는 것도 감자탕과의 차이다. “깻잎으로 끓이면 향이 더 풍부하고 국물이 맑죠. 유채의 단맛도 뼈와 잘 어울리고요.”

 태조감자국은 8년 전 할아버지의 ‘부암집’ 시절부터 터를 잡아온 가게에서 쫓겨나 바로 건너편인 이곳으로 옮겨왔다. 평생 이곳에서 자리 잡을 생각이었던 가족은 잠시 절망에 빠졌다.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게 구석구석에 남긴 흔적을 잃는다는 데 상실감이 컸다. “사진을 별로 찍지 않는 편인데 가게 구석구석에 아버지가 남긴 글들을 하나하나 찍어놨어요. 상실감이 컸죠. 몇 년 동안 분해서 앞집은 쳐다도 안 봤어요.” 서울시는 ‘태조감자국’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오래된 집들이 밀려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줄 것 같아서 오래 장사한 사람들은 미래유산 지정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매년 설 당일, 태조감자국 가족들은 가게로 모인다. 가게 내부 곳곳에 붙은 ‘57년 역사와 전통’ 앞의 두 자리 숫자를 새로 갱신하기 위해서다. 가족들과 함께 새해를 맞이해 올 한 해도 역사를 이어간다는 의미다. 다가오는 내년 설에는 숫자 ‘57’을 ‘58’로 덧붙인다. “예전부터 하던 행사라 원래 종이에는 무슨 숫자가 쓰여 있는지 모르겠어요. 종이가 두꺼워져 붙이지 못할 때까지 20년, 30년 계속 해나가는 게 제 유일한 욕심이죠.”

글=구혜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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