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에선 국민이 대통령
경상남도 김해시
봉하마을 방문기
세월호 참사·서거 5주기로
올해 100만명 이상 찾아
비문은 없이 비석 하나만
기념관은 군용 막사 같아
'국민이 대통령' 글귀 긴 여운
'사람사는 세상'은 멀지 않다.
김해시내에서 호젓한 시골길을 따라 30여 분이면 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이다.
마을은 길게 늘어선 노란색 바람개비 행렬의 끝에 있다. 관광안내소 옆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올해는 유난히 방문객이 많네요."
봉하마을의 김민정 해설사가 반갑게 맞으며 인사말을 대신했다.
"연초에 영화 변호인으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4월 세월호 참사와 5월 서거 5주기가 맞물리면서 계속 붐볐죠. 나라가 어려울수록, 삶이 힘들수록 더 많이 찾아와요."
김 해설사는 "봉하마을 방문객 숫자를 보면 민심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10월까지 100만 명 이상이 찾았다고 했다.
안내소에서 걸어가다 만난 생가는 소박했다. 11평 본채에 4.5평 아래채, 헛간과 화장실이 전부다. 생가 옆 '쉼터' 너머로는 대통령 사저가 보였다.
"여기 쉼터 앞에서 방문객들이 부르면 그때마다 노 전 대통령 내외 두 분이 손잡고 나오셔서 인사하셨어요. 하루에 가장 많이 나오셨을 때가 12차례였어요."
누군가 '쇼'라고 불렀던 방문객들과의 만남이었다. 김 해설가는 "난 정치는 잘 모르지만, 쇼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들판을 달리고, 땡볕 아래 직접 농사도 짓고, 매일같이 개천 일대를 청소하셨는데 쇼라면 너무 힘든 쇼 아닌가요."
노 전 대통령이 방문객들에게 마지막 인사한 날은 2008년 12월5일이다. "내년에 날씨 좀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인사 나오겠습니다"했다.
그 후 5개월 뒤 2009년 5월23일 쉼터 너머 부엉이 바위에서 노 전 대통령은 생을 마감했다.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온지 1년 3개월만이었다.
"국민장 때 비가 쏟아졌는데, 5km 떨어진 진영운동장에서 여기까지 조문객 줄이 이어졌어요."
당시 기사를 찾았다. 봉하마을 조문객을 대접한 밥을 짓는데 900가마가 들었다고 한다. 국밥에 들어간 콩나물은 18톤, 나눠준 생수는 500ml짜리 100만개였다. 장례를 돕는 자원봉사자는 5000명이었다.
쉼터에서 이어진 묘역은 이등변 삼각형 형태다. 작은 연못 '수반'을 꼭지점으로 헌화대, 너럭바위가 일직선에 놓여있다.
전체 묘역은 노 전 대통령을 위한 '하늘 우체통'이다. 바닥에 깔린 박석 1만5000개 한 장 한 장에 추모 메시지가 적혀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다.'
평일이었지만 헌화대에는 국화꽃들이 수북했다. 너럭바위에는 따로 비문을 새기지 않고 '대통령 노무현'만 새겼다. '한 조각, 비석 하나'를 부탁한 유언 때문이라고 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묘역을 돌아나왔다. 생가 맞은 편 '추모의 집'에서 방문길은 끝난다. 추모의 집은 대통령 기념관인데 군용 막사 같은 임시건물이다. 다른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관보다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생전에 타던 자전거와 옷, 사진 등 유품들이 전시됐다. 정면 벽은 4.4m X 3.7m 크기 전체에 노란 리본으로 만든 노 전 대통령 형상이 꾸며졌다. 리본 하나마다 추모메시지가 적혀있다. '어떻하죠. 아직도 그리운데….'
김 해설사는 안내하다가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했다.
"초등학생들이 물어요. 대통령이 왜 돌아가셨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직 전 모르겠어요."
추모의 집에선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았다. 먼저 사법고시 합격자 발표 기사다. 1975년 3월27일자 경향신문의 단신 기사 맨 마지막에 '고졸=노무현'이라고 쓰여있다. 추모의 집내 상영관에 반복 재생되던 생전 노 전 대통령의 모습도 잔상이 오래간다. 영상에서 노 전 대통령은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불렀다. 바탕화면에 글이 깔린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중략)…국민에게만 빚진 대통령 노무현, 국민 여러분만을 위해서 일하겠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추모의 집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해설사가 봉하마을 10월 소식지를 건넸다. 표지에 적힌 노 전 대통령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말하는 시민은(중략)…적어도 자기 몫을 주장할 줄 알고 자기 몫을 넘어서 내 이웃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시민이고, 그 시민 없이는 민주주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차를 타고 봉하마을을 떠났다. 길을 따라 늘어선 노란 바람개비들이 핑하고 돌았다.
정구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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