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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두고 온 사랑 자루

뽀드득 발밑에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다음 집은 어디지?" 하며 묻는 소리. 눈을 서로 던지며 소리죽여 깔깔거리는 중학생들. 졸음을 이기지 못해 결국 엄마 등에 늘어진 초등학생. 이맘때면 항상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입을 굳게 다물고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앞장선 집사님. 모두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도 동네를 깨끗하게 청소하시려고 나오신 분들에게도, 어딘지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어가는 행인들에게도, 하얗게 흩어지는 입김을 담고 예수님 오신 기쁨을 전하던 마주 오던 동네 교회 분들께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길이 길을 물고 한 사람도 겨우 지나갈 비탈진 골목을 오르면 우리 교회에서 전망이 제일 좋은 김 집사님 댁에 이릅니다. 어린 발걸음에 끝이 없어 보이던 길을, 앞서가는 집사님 뒤꿈치만 보며 걷습니다. 숨이 턱에 차서 굴뚝에서 연기 내듯 입김을 몰아쉬며 겨우 집 앞에 다다르면 벌써 집사님 댁 식구들이 모두 나와서 맞이하고 있습니다.

항상 근엄해 보이셨던 집사님은 "아이고, 이 멀리까지 욕 보셨습니다" 하시지만 기쁜 얼굴을 감추지 않으십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시기도 했던 집사님은 아이들에게 인기 '짱'이셨지요. 잘 생기시고 찬송도 잘 부르셨고 무엇보다 주머니에 한 번도 왕사탕이 떨어지신 적이 없었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아래로는 빨간 내복이 삐죽이 보이는 5살 막내 종칠이까지 잠도 자지 않고 모두 나왔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온 식구들과 조용하지만, 힘있게 부르자 인도하시던 집사님께서 한 곡 더 하자고 합니다. 이 집은 은혜가 더블이네. 모두 웃음꽃이 만발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이 산동네에는 예수님이 제일 먼저 오시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려옵니다. 그런데 올라갈 때와 무언지 달랐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올라갈 때는 집사님들께서 손과 어깨에 꽤 무거워 보이는 포댓자루를 들고 올라가신 것 같았는데 내려올 때는 모두 가벼운 발길입니다. 딴에는 밤새 발품을 팔아 모은 사탕 자루라고 생각했기에 곁에 걸어가시던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저기 사탕 자루 잊고 왔어요. 아버지는 물론이고 집사님들이 모두 저를 돌아보며 웃습니다. "사탕이 먹고 싶은 게구나. 그 자루는 사탕 자루가 아니라 '사랑 자루'야".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하던 저를 보며 다시 한 번 모두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산동네에 잊어버리고 두고 내려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요즘은 자주 물건을 여기저기 두고 온다고 핀잔을 듣습니다. 종류도 다양해서 펜, 전화기, 지갑 심지어 목사 주제에 성경책도 흘리고 다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흘리고 다니면서 오히려 잘 잊지도, 두고 오지도 못하는 하나가 있습니다. 이제 지나는 길에, 들어갔던 상점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흘리고 다니면 좋겠습니다.

찾아갔던 집에 잊어버리고 두고 나온 것이 목도리가 아니라 '사랑'이고 싶습니다.

한성윤 목사/ 나성남포교회
sunghan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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