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시간이 지운 흔적
정명숙 / 시인·롱아일랜드
정지해 있었고 시간이 그를 움직였네
시간은 그 위를 고요히 흘러갔네
바람이 부드럽게 그를 간질이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네.
따뜻한 햇살에 사랑을 배우고
별 사냥에 꿈을 키우고
솜털구름을 타고 놀았네.
비바람이 몰려오면 비틀거렸고
허리케인이 내려치면 넘어졌네.
배가 고팠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허기였고
움직이게 한 것은 굶주림이었네.
굶주림에 지친 그는 자꾸만 작아지는데
시간은 하염없이 그 위를 흘러가네.
시간은 오늘도 그 위에
생의 무늬를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네.
싹 하나 피우지 못하고 시들해진
시간이 지운 흔적
한 번쯤 읽혀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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