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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0주년 특별기획-Minority Report] "상냥한 친절의 끝은 멸시인가요?"

웃음 뒤에 숨겨진 '참을 수 없는 모멸감'
서비스업 '을'의 우울…자살까지 치밀어

# "공감이 가죠, 왜 안 가요. 그 사람 심정 이해가 갑니다. 단지 조금 더 참았으면 좋았을걸…안타깝죠."

두 달여전 한국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분신 자살한 경비원을 두고 이원종(가명)씨가 하는 말이다.

이씨 역시 12년째 LA의 한 건물에서 경비일을 맡아보고 있다. 주된 업무는 주차장 관리. 하루 종일 야외주차장에 서서 수백명의 직원과 방문객들을 응대해야 한다.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울컥 목이 메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말도 못하지…"



"우선 방문객이 오면 주차관리를 위해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데, 물어보는 거 자체를 싫어하세요. 대답하기 싫다는 짜증이 목소리에 묻어있죠. 그리고 대부분 말을 짧게 하죠. 아예 무시하고 대답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반말을 기본이고요. 그들에게 제 나이 같은 건 전혀 상관없지요. 아들뻘 아니 손자뻘이 되는 사람들에게도 저는 그저 경비원일 뿐인 겁니다."

나이를 감안해 '어르신'하고 불러주는 사람은 100명에 1명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올해 75세다.

"내가 담배를 못 끊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담배라도 피우면서 그 연기에라도 스트레스 날려버려야지, 아니면 못 견딥니다." 그렇게 그는 참아낸다.

#유니티 부동산의 자넷 권씨. 디즈니사에서 일하다가 부동산 에이전트로 전향한지 14년째다. 세월이 더해질 때마다 커리어도 쌓여가고 그만큼 프로의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아무리 프로의식을 갖고 일해도 고객들을 상대하는 것은 녹록치가 않다.

몇달동안 성심성의껏 일을 했지만 다른 에이전트와 계약을 해버릴 때는 배신감마저 들지만 불평도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좁은 바닥에서 자칫 소문이라도 잘못나면 일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자괴감에 빠질때도 있다. 집사처럼 부리는 고객들을 상대할 때다. 어떤 고객은 마켓에서 고추장을 사다달라, 제과점에서 빵을 사다달라, 여행 갈 때면 강아지 밥을 챙겨달라, 아이들을 학교에서 픽업해 달라는 등의 잔심부름도 요구한다.

고객만족시대고 아무리 자부심을 갖고 일하지만 그저 좋게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들에게는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감정이다. 철저히 숨겨야 한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가는 밥줄이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위 '감정노동자'들이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산업이 고도화되고 서비스업종이 증가하면서 등장한 노동의 형태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며 일상적인 직무를 봐야한다. 1983년 캘리포니아주립대 앨리 러셀 혹쉴드 교수의 '관리된 심장-감정의 상품화'라는 저서에 처음으로 사용됐다.

지난해 포스코의 한 임원이 '라면을 끓여주지 않는다'며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은 감정노동자들이 처한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발생한 경비원의 죽음도 같은 맥락이다. 이 사건은 아파트 입주민의 폭언을 견디지 못한 경비원이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리고 자살을 하면서 불거졌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면 자신의 생명까지 사지로 던질 수 있는 것일까.

미주한인사회 역시 위의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식당에서 일하는 서버부터 영업사원, 콜센터 상담원, 마켓 점원, 부동산 에이전트, 항공기 승무원, 미용사 등의 수많은 사람이 감정노동자로서의 고충을 감당하고 있다.

감정노동은 '갑'과 '을'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서비스 업종에서 두드러진다.

한인마켓의 종사자들은 억지를 부리거나 이유 없는 트집을 부리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또 대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보다는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고객들도 많아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한다.

"30대 중반의 한 남성고객이 본인보다 10살은 많은 여성 점원에게 막말을 퍼부어서 수습을 한 적이 있었다. 정말 씁쓸했던 건 그 고객이 퍼붓고 돌아서며 웃더라. 그저 소리 지르며 스트레스 한번 푼 거다. 그들은 퍼부으면 그만이겠지만 그 막말을 듣는 점원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는다."(마켓 매니저)

텔레마케팅이나 전화업무를 보는 쪽에서는 감정노동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전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 업체에서는 상담원들이 4~6시간 동안 200~300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다. 애당초 예의는 바라지 않는다. 조금만 늦게 전화를 받아도 화를 내고 일부는 욕을 내 뱉는다. 술주정하는 고객도 있다. 특히 상담원 목소리가 어리다고 판단하면 반말은 기본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애써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상담원들은 못내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오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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