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등불 아래서] 바늘 꽂을 곳을 찾던 사람들

오랫동안 이리저리 상자에 담겨 주인을 쫓아다니던 노트를 읽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말자며 밤새도록 침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던 동지들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말씀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우고, 밥 한 끼 먹겠다고 성경 구절을 암송하며 깔깔거리고, 예수님을 알았다는 사실 하나에 울고 웃던 이들의 이름도 사진 뒤에 깨알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화염병이 난무하는 거리요, 하얀 눈발처럼 터지던 최루탄으로 가득 찬 하늘뿐이던 시절.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해도 쫓아오는 가난을 뿌리치지 못했고, 학생들은 그저 눈물과 콧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난, 불평등, 불의, 분노 그리고 암울만이 살아있는 이름인 듯 젊은이들의 가슴 속을 설치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가뭄 속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마음은 더 목말랐고, 세상을 향한 이유 있는 외침은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노트를 열고 성큼 들어가니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는 농부의 마음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웠습니다. 파릇하던 젊음도, 꽤 낭만적이었던 추억도 아니었고 교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말씀을 듣고 갈증을 달래던 열망도 아니었습니다. 사진 뒤에 적혀있는 살아있는 이름들이 그리웠습니다. 암울을 함께했지만 송곳이 아니라면 바늘을 꽂자며 한 영혼을 붙잡고 밤을 새우고, 세상을 평화와 섬김으로 이기리라고 다짐하던 까맣지만 반짝이던 눈들이 그리웠습니다.

보고 싶으냐구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리운 이유는 다시 보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그들의 이름이 그리운 이유는 어느덧 그 이름을 아프고 곪은 교회와 함께 듣기 때문입니다. 가끔 들리는 소식에는 모든 지분을 포기한 하나님 나라의 외인부대로 자처하며 몸을 던지던 이들이 어느덧 권력과 조직 속에서 자신을 소모하고 있다는 말도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빛바랜 사진 속에 이름들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도 그리워졌습니다. 어느덧 교회라는 생명 공동체가 아니라 조직 속에 익숙해진 목사가 거울 안에 서 있고, 바늘 꽂을 곳을 찾던 이가 책상 뒤에 앉아 내년에는 어떤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좀 더 활성화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어느새 굳게 최면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그리웠습니다. 제가 지금 목사라고 원망이나 불만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리 과거가 아름다워 보이고 추억이 발밑에서 낙엽 부서지는 소리를 내어도 오늘까지 인도하신 주님의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아니어도 생명을 위해 울었던 시간이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교회를 세상으로 만들면서 교회라고 우기고, 힘을 자랑하는 저 척박해지는 땅을 향해 다시 바늘을 들고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리 꽂아도 내 것이 되지 않고 티도 나지 않지만 확실하게 아픈 바늘을 든 이름조차 버린 하나님 나라의 외인부대 말입니다.

한성윤 목사 / 나성남포교회
sunghan08@gmail.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