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열쇠의 무게, 인생의 무게
김종민/목사
열쇠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무엇인가 잠글 것이 생긴다는 뜻이겠지. 잠근다는 말은 아무에게나 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비밀, 나만의 것이 생긴다는 의미다.
선생님께 숙제검사 맡는 일기장이 아닌 자물쇠가 있는 일기장이 생겼을 때의 그 비밀스러운 두근거림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일기장 열쇠 한개가 생기고, 책상 서랍을 잠그고 또 하나의 열쇠를 챙기고, 그러다 차가 생기고, 집이 생기고, 일터가 생기고, 점점 열쇠가 늘어간다. 이제는 컴퓨터를 켤 때도 비밀번호라는 보이지 않는 열쇠가 필요하다. 인터넷 온갖 곳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요구해서, 인터넷 열쇠를 만들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내 열쇠를 공유하는 사람을 가족이라 부르고 동료라고 부른다. 열쇠가 맞지 않는 사람은 낯선 이방인이요, 내 세계의 침입자이다. 열쇠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가진 것이 많고 나만의 공간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열쇠의 개수만큼 행복도 그만큼 더 늘어난 것일까. 예전에는 잠깐 다녀오는 것 쯤이야 그냥 문 살짝 닫고 나올 수 있었지만, 이제는 현관문만 해도 두 개, 세 개를 잠그고 나와야 한다.
어쩌다 열쇠를 잃어버린다 치면, 나도 내 세계에서 이방인이 된다. 방금 전까지 타고 온 자동차 문을 열 수도 없고, 내 집에 들어갈 수도 없다. 함께 공유하는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그만큼 힘겨운 일이며, 지켜 내야 할 것이 더 많아 불안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큰 자물쇠, 더 많은 열쇠가 필요하고 더 높은 담이 필요해진다.
자물쇠의 역할은 잠그는 것이고 열쇠의 역할은 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까지 열쇠를 자물쇠로 착각하고 부지런히 잠그고만 다니지 않았는가? 가족으로부터 잠그고, 친구로부터 잠그고, 세상으로부터 잠그고, 숨 쉴 틈새 하나 없어 부지런히도 잠그고 다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인생의 독방 안에 갇혀 있다. 열쇠가 인생의 훈장인 줄 알았더니 이제는 오히려 짐이다. 열쇠 한 개가 없으면 그 만큼 걱정도 줄어 들 것을, 왜 열어두지 못하고 내어 주지 못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우리는 자물쇠가 아니라 열쇠를 가지고 다닌다. 이제는 지금껏 잠가 둔 것을 열 때가 되었다. 아직 손안에 열쇠가 있을 때, 더 늦지 않도록 외로운 그 독방의 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인생의 무게에 지쳐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면 그 짐을 내려 놓아야 한다. 내려 놓으면 그만인 것을, 그것이 다 무엇이라고 그렇게 꼭꼭 잠그고 숨겨 놓았는지. 열쇠의 무게가 가벼워야 인생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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