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에어]황우석과 '제보자'
2004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사상 최초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논문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놀라운 발표가 이어진다. 환자맞춤형 인간체세포복제 줄기세포주 11종을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그때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장애인들은 물론이고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도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인간이 드디어 질병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때가 왔다며 기뻐했다. 언론도 신이 나 하루가 멀다고 황 전 교수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황 전 교수가 이렇게 한창 잘나가던 시절 그를 취재한 적이 있다. 미국을 방문할 일이 있었던 황 전 교수가 한 한인단체의 초청을 받아들여 LA에 온 것이다. 그날 자리를 메운 청중들은 황 전 교수의 겸손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매료됐다. 그는 감동에 젖어 있는 청중들을 향해 더 열심히 해 반드시 난치병을 정복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그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쫓으며 행사 내내 인터뷰 기회를 노렸지만 겨우 명함만 얻어 왔다. 사무실에 돌아와 명함에 적힌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다음에 또 LA에 오게 되면 꼭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부탁과 함께 앞으로의 연구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며칠 후 놀랍게도 황 전 교수로부터 답장이 왔다. 한국에 잘 도착해 연구를 다시 시작했고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기회가 된다면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했다. 읽어만 줘도 좋겠다고 쓴 메일에 답장까지 받으니 황송했다. 이렇게 세밀한 것까지 챙기니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위에 그의 칭찬을 늘어놨다. 물론 줄기세포 복제가 조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최근 '제보자'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른바 '황우석 스캔들'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이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임을 밝혔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10년 전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영화 속에서 줄기세포 권위자 이장환 박사는 자신이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이유는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서라며 휠체어를 탄 환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이 박사의 연구 진위여부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가 기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언론사 담당기자 1명당 관리 인력을 따로 두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지난달 JTBC 뉴스룸에 이 영화를 만든 임순례 감독이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를 했다. "영화화하기 참 쉽지 않았을 소재였을 것"이라는 손 앵커의 질문에 "여전히 민감한 소재이지만 10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스캔들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 언론인과 제보자가 겪어야 했던 위험에 비하면 잠시 논란에 중심에 서는 것은 망설이면 안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진실과 국익 중 어떤 것이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100번을 대답해도 진실이 먼저"라고 말했다.
황 전 교수는 지난 10년간 법정 공방을 벌여 오다 지난 2월 대법원으로부터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실을 숨기고 연구비를 횡령한 혐의에 대한 유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진실의 가치를 아는 용기있는 제보자와 언론이 없었다면 아직도 우리는 황 전 교수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속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 소 현
JTBC LA특파원.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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